Home >

전망 좋은 방 - 장경복

2001.04.23 10:39

윤성택 조회 수:1888 추천:325

        95서울신문 신춘문예당선작/ 장경복 / 문학세계사

                        


        전망 좋은 방

                                        

        눈을 뜨는 것도 밖을 살피는 일이다  자전거가 내리막에서 급하게
        길을 긋거나 아이들의 고무줄 놀이가 이곳까지 합창을 날려도
        하늘이 가까워 위를 본다, 머리 위엔 길거리만큼 복잡한 햇살의
        골목이 있다

        떨어진 나뭇잎이 새로 난 신작로를 알려준다 그 도로의 끝엔
        임종을 앞두고 화장을 하는 늙은 계절이 있을 것이다
        오시지 않는 손님을 마중하러 사람들이 몰려갔다
        몇몇은 구석에 숨어 담배를 피웠고 저들끼리 싸우는 축도 있었다
        연탄을 실은 리어카가 그들을 가로질러 갔고
        꼬마들은 검은 흔적을 찾아 비닐봉지처럼 날렸다
        잘못 켜진 가로등이 창백한 낯빛을 숨겼다

        보이는 것은 모두 숨으려 한다 언덕마다 노출된 숨결이 바람을
        맞고오는 동안 야위어 갔다 저 혼자 흔들리는 빨래들 속에
        피곤한 몸들이 채워질 것이다 겹겹이 채워도 커지지 않는 그림자들
        엉킨 전선줄이 헛그물질을 한다 건져지는 것은 해마다 떠나리라는
        잡초 같은 소문이었다

        발 밑에 별이 깔리기 전에 바빠져야 한다 복잡한 햇살의 골목
        급한 참새 한 마리 뛰어나오다 바람에 치여 떨어졌다




[감상]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금껏 하숙과 자취에 익숙한 저로서는 이런 소시민적인 시들에 쉽게 감명을 받습니다. 고만고만하게 사는 것이 인간의 영적 진화와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망 좋은 방임은 분명합니다. 이 시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을버스가 유일한 수단인 산동네가 한눈에 선합니다. "엉킨 전선줄이 헛그물질을 한다 건져지는 것은 해마다 떠나리라는/ 잡초 같은 소문이었다" 부분에서는 잡초의 생명력과 삶을 결부시킨 점이 좋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늘 "복잡한 햇살의 골목"에서 빠져나온 것은 아닌지요.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31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 장석남 [1] 2001.04.28 1758 321
30 자미원민들레 - 이향지 2001.04.27 1575 291
29 펜 노동자의 일기 - 이윤택 2001.04.26 1661 321
28 벽돌이 올라가다 - 장정일 2001.04.25 1710 294
27 ㅎ 방직공장의 소녀들 - 이기인 2001.04.24 1667 331
» 전망 좋은 방 - 장경복 2001.04.23 1888 325
25 여자들 - 김유선 2001.04.21 1863 291
24 연애 - 안도현 2001.04.20 2279 282
23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2001.04.19 2093 292
22 맑은 날 - 김선우 2001.04.18 2225 284
21 간이역 - 김선우 [2] 2001.04.17 2216 324
20 내 영혼은 오래 되었으나 - 허수경 2001.04.16 2124 327
19 찬비 내리고 - 나희덕 2001.04.14 2112 302
18 우울한 샹송 - 이수익 2001.04.13 1876 324
17 날아가세요 - 허연 2001.04.12 2171 327
16 우체통 - 이진명 2001.04.11 2537 334
15 트렁크 - 김언희 2001.04.11 1757 332
14 왕십리 - 권혁웅 [1] 2001.04.10 1841 292
13 제기동 블루스·1 - 강연호 [2] 2001.04.10 1800 283
12 정기구독 목록 - 최갑수 [1] 2001.04.10 1879 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