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장석남 / 창작과비평사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죽은 꽃나무를 뽑아낸 일뿐인데
그리고 꽃나무가 있던 자리를 바라본 일뿐인데
목이 말라 사이다를 한 컵 마시고는
다시 그 자리를 바라본 일뿐인데
잘못 꾼 꿈이 있었나?
인젠 꽃이름도 잘 생각나지 않는 잔상殘像들
지나가는 바람이 잠시
손금을 펴보던 모습이었을 뿐인데
인제는 다시 안 올 길이었긴 하여도
그런 길이었긴 하여도
이런 날은 아픔이 낫는 것도 섭섭하겠네
[감상]
최근에 펴낸 이 시집, 일상언어의 리듬감을 제대로 살리면서도 그 언어들이 낡은 이미지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이미지로 다가서게 하고 있다는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왼쪽 가슴 아래께에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니, 바로 "심장"이더군요. 그러니까 심장, 마음이 아프다는 것인데 시인은 "죽은 꽃나무"에서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요. 시인은 어쩌면 그 꽃나무에게서 삶과 죽음 그리고 인연에 대한 것들을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인제는 다시 안 올 길이었긴 하여도/ 그런 길이었긴 하여도"에서 생명의 사멸에 대한 생각, 그 존재에 대한 깊이를 떠올리며 "이런 날은 아픔이 낫는 것도 섭섭하겠네"라고 합니다. 시인의 감성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아, 그런데 나에게는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이란 연애에 대한 것뿐이었으니, 누가 내 심장에 꽃나무를 심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