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크림케이크」 / 조은영 / 《현대시학》2004년 4월호, 신인상 당선작
생크림케이크
군대간 애인 생일이었네
갈매빛으로 여물어가는 여름은
색색 풀꽃들이 장식되어 있었네
자동차는 더위로 흐물거렸네
이마에 붙은 머리칼을 쓸어 올리는데
서녘 하늘에 붉새가 날고 있었네
클클거리는 낡은 자동차를
미시령은 자꾸 끌어 내렸지만
나는 무모했었네 일생처럼 기다린
그의 스물 두 살 생일이었네
어둠조차 뜨거운 군부대 면회소
후끈해진 트렁크를 열었네
달지근하게 녹아버린 케이크,
셈 할 수 있는 것은 그리움뿐이었네
달무리진 하늘이 금세 울 것 같았네
초코파이에 꽂아 밝혔던 애인의 스물 두 살
흘러내리는 촛농처럼 가장 뜨거운 순간이었네
주의사항에 꼼꼼해진 서른 살,
케이크를 고르다 한 시절을 맛보네
녹아든 첫사랑은 유통기한이 없다네
[감상]
생크림케이크 사들고 면회를 나서는 갈래머리 처녀의 풋풋한 여정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행간마다 함께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이유는, '나는 무모했었네 일생처럼 기다린/ 그의 스물 두 살 생일이었네'가 말해주듯 누구나 다 거쳐온 첫사랑의 느낌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방에서 2년여 청춘을 보낸 이 시대의 예비군들이 이 시 한편에 전부 추억의 면회소로 몰려갈 것 같군요. 참 섬세하고 단아한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