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 물 위의 연꽃들」/ 서영처/ 『문학판』 2003년 등단
태양, 물 위의 연꽃들
누각은 기러기나 오리의 날개처럼 세워진다 그 아래 내 안압을 팽창시
키는 못이 있다 중얼중얼 물결 퍼지자 대궁은 움켜쥐었던 햇살 펼친다
꽃잎은 손가락이다 못의 근심이 밀어올린 태양, 망막을 찢으며 수면 구
석구석을 수런댄다
매표소 근처 바람개비 파는 여자, 장맛비 못 둑 넘치게 울어 눈이 벌겋
다 생각난 듯 가슴 헤치고 돌아앉자 주린 젖먹이 어미의 무덤 속으로 파
고든다 아기 잇몸 뚫고 하얀 꽃잎 돋아난다 가쁜 숨들 어둠 삼키고 자맥
질치며 솟아오른다
[감상]
연꽃이 피는 연못을 '눈(目)'으로 비유한 것이 1연의 중심축이겠구나 싶습니다. 사방이 탁 트인 '누각'은 연못 위의 기러기나 오리의 것이어서 날아오르기만 하면 사라지는 공중누각인 셈입니다. 물의 파문을 언어로 치환시키는 '중얼중얼'이나, 대궁이 피어나 펼쳐지는 것을 '손가락'으로 단언하거나, 이런 것을 피워내기 위해 못의 근심이 태양을 밀어 올린다는 발상도 새롭습니다. 바람개비를 파는 여자의 눈물은 장사가 안 되는 장마철과 맞물려 다의적 의미를 내포해내고, 아이 잇몸에 돋아나는 이를 '하얀꽃'으로 바꿔내는 것 또한 범상치 않은 시적 직관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 시 한 편에 우리네 세간이 다 들어 있군요. 문장의 정교함이 돋보이는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