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가 내려다보이는 집」/ 이창수/ 『시안』 2000년 등단
고속도로가 내려다보이는 집
내 방 창문을 열면 고속도로가 있다. 한겨울에도 살아 꿈틀거리는 흰 뱀과
같은. 금이 간 벽을 따라 흘러 들어오는 유령의 소리들, 빛 바랜 오렌지색 커
튼을 열고 비좁은 내 꿈자리에서 서성거린다.
어린 조카는 창 너머에 호랑이가 있다고 믿는다. 삼촌 호랑이. 칠순의 아버
지가 강아지 발목 굵기의 감나무에서 하루 종일 따 내렸을 슬픈 과일을 씹으
며 조카는 호랑이를 중얼거린다.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속력이 만들어 내는 굉음의 숲에서 잃어버린 사람
들이 보이질 않는다. 살아서는 결코 넘지 못할 것만 같은 이 속력의 성벽, 나
날이 굳건하게 커져만 가는 제국의 국경을 무사히 넘어갈 수는 없는가.
[감상]
고속도로가 인접해 있는 집에서 느끼는 '소리'에 대한 감각화가 좋습니다. 고속도로를 전망하는 시점에서 보게되면 도로는 흰 뱀처럼 보일 듯 싶고요. 창틀에 끼어오는 자동차 주행소리는 커튼을 닫아도 유령처럼 새어나올 것입니다. 그 소리를 호랑이의 포효라고 믿는 조카의 등장은 이 시가 서사까지 아우르는 힘을 보여줍니다. 행여 엄청난 그 속도의 경계로 인해, 사라진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을까요. 교통사고 소식이 매달린 감나무는 더 이상 자라지 않고 그 슬픔을 따먹은 조카는 호랑이가 물어간 가족을 생각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