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고속도로가 내려다보이는 집 - 이창수

2004.04.16 14:51

윤성택 조회 수:1176 추천:171

「고속도로가 내려다보이는 집」/ 이창수/ 『시안』 2000년 등단



  고속도로가 내려다보이는 집


  내 방 창문을 열면 고속도로가 있다.  한겨울에도 살아 꿈틀거리는 흰 뱀과
같은. 금이 간 벽을 따라 흘러 들어오는 유령의 소리들, 빛 바랜 오렌지색 커
튼을 열고 비좁은 내 꿈자리에서 서성거린다.

  어린 조카는 창 너머에 호랑이가 있다고 믿는다. 삼촌 호랑이.  칠순의 아버
지가 강아지 발목 굵기의 감나무에서 하루 종일 따 내렸을  슬픈 과일을 씹으
며 조카는 호랑이를 중얼거린다.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속력이 만들어 내는 굉음의 숲에서 잃어버린 사람
들이 보이질 않는다.  살아서는 결코 넘지 못할 것만 같은 이 속력의 성벽, 나
날이 굳건하게 커져만 가는 제국의 국경을 무사히 넘어갈 수는 없는가.  



[감상]
고속도로가 인접해 있는 집에서 느끼는 '소리'에 대한 감각화가 좋습니다. 고속도로를 전망하는 시점에서 보게되면 도로는 흰 뱀처럼 보일 듯 싶고요. 창틀에 끼어오는 자동차 주행소리는 커튼을 닫아도 유령처럼 새어나올 것입니다. 그 소리를 호랑이의 포효라고 믿는 조카의 등장은 이 시가 서사까지 아우르는 힘을 보여줍니다. 행여 엄청난 그 속도의 경계로 인해, 사라진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을까요. 교통사고 소식이 매달린 감나무는 더 이상 자라지 않고 그 슬픔을 따먹은 조카는 호랑이가 물어간 가족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611 들풀 - 이종욱 [2] 2004.04.26 1453 167
610 그녀와 길을 걷는다 - 이대흠 [1] 2004.04.22 1380 187
609 폭설, 민박, 편지 - 김경주 2004.04.20 1334 195
608 살가죽구두 - 손택수 2004.04.19 1110 176
» 고속도로가 내려다보이는 집 - 이창수 2004.04.16 1176 171
606 벽 속의 달 - 김혜영 2004.04.14 1310 168
605 태양, 물 위의 연꽃들 - 서영처 2004.04.13 1210 182
604 공중부양 - 박강우 2004.04.12 1121 225
603 옛날노래를 듣다 - 이성목 2004.04.08 1336 163
602 동백꽃 - 김완하 2004.04.07 1287 173
601 내가 내 안의 나인가 - 김정숙 [10] 2004.04.02 1777 200
600 그을림에 대하여 - 정병근 2004.04.01 1308 190
599 가구 - 도종환 2004.03.31 1347 223
598 생크림케이크 - 조은영 2004.03.30 1548 236
597 빗속에서 나는 건너편과 화해하고 싶다 - 조정인 2004.03.29 1371 197
596 자폐 - 예현연 2004.03.27 1329 185
595 봄날 - 심재휘 2004.03.25 1737 203
594 잠들기 전에 눈물이 - 강인한 [3] 2004.03.24 1597 217
593 꽃무릇에 찍히다 - 신수현 2004.03.22 1329 232
592 등뒤의 사랑 - 오인태 2004.03.19 1603 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