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모교에 갔었습니다.
스쿨버스 안에서 깜빡깜빡 졸면서
비온 뒤 안개가 설핏 낀 풍경들이
추억을 상영하기도 하여
한참동안 아스라했습니다.
에스 자로 흐르는 강줄기며
그 길을 따라 걸으며 가로등을
마이크 삼아 혼자서 불렀던 노래들.
기억날만한 것들은 죄다 소주병처럼 둥글어
그 길 어느 둔덕에 넘어져 긁혔던
무릎 아래 상처로 푸릇한데.
그곳의 안개가 나를 숨겨왔던 것처럼
나도 누군가를 숨겨줄 은신처가 될 순 없었을까.
일순 아늑했던 기억들,
일순 밤마다 불러 들였던 친구들,
오직 술병이 주인이었던 대광빌라 자취방.
어쩌면 그때가 내 청춘의 가장 빛나는
심장을 지나는 때가 아니었을까.
아마도 詩가 으슬으슬 결려오는 모교는
지금도 내 마음의 소주병인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