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 최금진/ 『창작과비평』 2003년 봄호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엄마는 오지 않았다
누나는 추워서 노루처럼 자꾸 웃었다 밤새
쥐들이 사람의 목소리로 문고리를 잡아 당겼고
누나는 초경을 했는데 받아낼 그릇이 없었다
두부 같은 누나의 살들이 부서질까봐 나는
자꾸 이불을 끌어 덮어주었다
대접 속에 얼어붙은 강은 녹지 않았다
나는 벽에 걸린 엄마 사진이 부끄러웠다
뒷문을 열고 내다보면 하얗게 늙은 애들
군가를 부르며 지나갈 때마다
누나는 콩나물처럼 말갛게 속살이 익어갔다
밥상을 차리며
나는 눈물이 나왔다, 군불을 때면
아지랑이가 눈알 속에 피어오르고
거뭇거뭇해진 내 입 주위에도
변성기가 우르르 사나운 눈발처럼 달라붙었다
아아, 엄마, 나는 무엇을 잘못한 걸까요
밤이면 몰래 손톱으로 가려운 몸을 긁어댔다
엄마는 오지 않았고
겨울밤의 흰 문종이를 뚫고 몽유병처럼
신음 소리를 흘려보내는 누나를 부둥켜안고
나는 오지 않은 봄을 향해 달려나갔다
엄마야...... 누나야...... (제발)
강변 살자......
[감상]
시의 울림의 주위에는 이렇듯 '절실함'이 있습니다. 이 시는 엄마의 부재 속 누나와의 삶을 긴장된 묘사로 끌어들여 독자를 화자의 감정에 이르게 합니다. 사실 이런 절박감은 소재주의나 극적 포즈와의 위태로운 외줄타기가 되기 십상이어서, '감정'과 '감상' 사이 균형 잡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그런 우려는 기우일 뿐입니다. 인간 내면에 깔린 순수한 본질을 심미적으로 투영해 내는 감성의 눈이 돋보인다고 할까요. 특히 '거뭇거뭇해진 내 입 주위에도/ 변성기가 우르르 사나운 눈발처럼 달라붙었다'처럼 직유를 만들어 내는 솜씨는 이 시인만이 갖고 있는 뛰어난 직관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끔씩 생각해보는데 이 시인의 첫 시집이 참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