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래된 가구 - 마경덕

2003.03.10 13:24

윤성택 조회 수:1125 추천:200

『신춘문예 당선시집』 / 마경덕/ 문학세계사



        오래된 가구


        짧은 다리로 버티고 선 장롱
        두 장정(壯丁)의 힘에 밀려
        끙, 간신히 한 발을 떼어놓는다
        움푹 패인 발자국 네 개
        한 자리를 지켜온 이십 년의 체중이
        비닐장판에 찍혀 있다

        잠시 땀을 식히며 들여다본
        허름한 목판(木版)
        긁히고 멍든 자국이 드러난다
        나무의 속살에 이렇듯 상처가 많았던가
        언제부턴가 문짝에 틈 하나를 내주고
        서서히 기울고 있었구나
        머리맡에 서 있는 네게 기대어
        책을 읽고 아이를 낳고 TV를 보며
        남편의 늦은 귀가를 기다렸었다
        
        열 자나 되는 몸통을 지붕 아래 세우고
        방바닥에 뿌리를 내린
        묵은 나무 한 그루
        어깨를 안아보니
        우듬지로 오르는 물소리 들린다
        오래된 가구는
        아직 숲을 기억하는지
        발 아래 무성한 그늘을 떨어뜨리고


        

[감상]
무엇이 새로운가? 이 질문만으로도 이 시는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삿날 내다 놓은 가구의 그림자를 '아직 숲을 기억하는지/ 발 아래 무성한 그늘을 떨어뜨리고'의 부분에서 상상력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느낍니다. 좋은 시는 항상 자신만의 새로운 발견이 일정 함량 들어 있습니다. 시를 쓰고 싶다면 이렇듯 새롭게 보기, 자신만의  발견부터 메모해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411 흑백다방 - 정일근 2003.04.11 1226 177
410 얼굴 없는 기억 - 김일영 2003.04.10 1127 146
409 활엽수림 영화관 - 문성해 2003.04.08 1087 183
408 봄소풍 - 박성우 2003.04.07 1295 165
407 달밤에 숨어 - 고재종 2003.04.03 1154 161
406 때늦은 점심 - 이지현 [1] 2003.04.02 1085 158
405 암각화 - 오탁번 2003.04.01 931 165
404 상상동물 이야기·5 - 권혁웅 2003.03.28 978 154
403 노인과 수레 - 안시아 2003.03.26 1235 194
402 생선 - 조동범 [1] 2003.03.21 1213 160
401 오래된 부채 - 천수호 2003.03.20 1064 199
400 술병 빗돌 - 이면우 [1] 2003.03.18 1074 176
399 구름, 한 자리에 있지 못하는 - 이명덕 2003.03.17 1046 179
398 나무 - 안도현 [1] 2003.03.15 1672 163
397 어머니 방 - 조숙향 2003.03.13 1221 166
396 25時 체인점 앞에서 - 최을원 2003.03.12 1069 172
395 탈피 - 박판식 2003.03.11 1072 208
» 오래된 가구 - 마경덕 2003.03.10 1125 200
393 그들의 봄밤 - 김수우 [1] 2003.03.07 1184 168
392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 최금진 2003.03.06 1398 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