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방 」/ 조숙향/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03년 3월호, 신인상 당선작
어머니 방
어머니 방에는 풍맞아
반신이 뒤틀린 오래된 장롱과
손으로 채널을 돌려야 지지직
소리를 내는 텔레비전과 무명실로
다리를 이은 돋보기 안경이
그대로 놓여 있다, 아직도.
여기에 오기까지 나는 35번 국도를 지나
구절양장 죽령을 어질어질 달려왔다.
지쳤다고 피곤하다고 투정하기 전에
코에 익은 익숙한 흙냄새가
마음의 빗장을 열어젖힌다.
밤마다 베개 밑을 들쑤셨던 회오리바람도
반갑게 창문 틈새로 고개를
갸웃, 내민다.
장롱 속에는 늘상 덮고 주무셨을
어머니의 이불이 아직 따스할 것이다.
나는 주술에 걸린 어린 아이처럼
깊은 잠에 빠질 것 같다.
[감상]
늘 검소하신 어머니가 떠올려집니다. 시대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지나온 길에 있어 어머니의 존재는 누구도 부정 못할 삶 그 자체입니다. 이 시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방을 애잔하게 떠올려 냅니다. 비록 몸은 가셨지만 그 마음 머물던 곳이 각박하게 살아가는 화자의 도피처가 될 수 있겠다 싶습니다. 한 해 한 해 나이가 먹어갈수록 우리는 어머니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와 합일된 위치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의미를 확장시켜 본다면 어머니의 방뿐 아니겠지요. 누가 내 마음의 방을 기억할까? 이런 자문을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