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우물」/ 서영처/ 『문학판』 2003 여름호 신인상 수상작 中
오래된 우물
땅속으로 열린 귓바퀴, 두레박 하나 보청기로 매달렸네 길어올리는
수런거림 가려운 귓벽 이쪽저쪽을 긁을수록 샘물도 힘차게 솟았네
함부로 던져넣은 막대기 장난감 따위 귀청 후벼내듯 소제해버리면
바다 그득 머금고 출렁거리던 우물 아이들 고개 빠뜨린 채 해바라기
꽃 되어 둥둥 떠다니다 흩어지곤 했네 검은 물살이 팽팽하게 끌어당
기던 나일론 줄 땅 밑으로 연결된 터널 내려가 이름들 나직이 불러낼
수 있을까
두근거리며 이야기 길어올리고 싶었네 오래 들여다보면 그림자 어
른거리는 창이 보였네 아-아-오-오- 너무 많은 것 듣느라 창은 귀먹
어버렸네 잠 이루지 못하는 밤 푸른 종소리 듣네 두레박질로 퍼올리
던 건 시원한 종소리 날마다 우물에 가서 종을 쳤었네
[감상]
우물의 두레박을 '보청기'로 비유하다니요! 매콤한 풋고추 된장에 찍어먹는 맛입니다. 이처럼 생각의 발상이 얼마나 시의 신선도를 유지케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종소리까지 이어지는 상상력 또한 좋고요. 사물을 어떻게 파악하느냐, 그게 요즘 시쓰기의 화두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