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박남희/ 『현대시』8월호, 이달의 시인 中
골목길
우리 집 근처에는 골목길이 많이 있다
골목길은 수많은 것을 이끌고 자꾸 막다른 곳으로만 간다
나는 막다른 곳에 끌려가서 우두커니 서있던
나무며, 리어카며, 세 발 자전거들을 기억한다
어떤 때는 꽃샘추위에 쫓겨 온 개나리꽃들을 본적도 있다
시궁쥐들은 골목길에 수많은 구멍을 뚫어 놓고
밤 낮 없이 빛을 물어 나른다
이곳에는 항상 빛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믐달과 함께 골목길을 걸어가며
연탄재며, 소주병이며, 폐휴지들이 기억하던
수많은 이름들이 슬슬 풀려 나와 또 다른 골목길을
만들며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동네는 수많은 골목길이 생겨났다
나는 이 복잡한 골목길을 걸어다니면서
저 혼자 자꾸 지하로 숨어 들어가고 싶어하던
작은 골목길 하나를 알게 되었다
그 막다른 골목길의 끝자리 주소는
독거노인과 함께 사는 강아지 한 마리가 알려주었다
지하로 움푹 들어가
이미 무덤이 되어버린 그곳에,
콜록콜록 기침을 하며
골목길이 이불을 덮고 누워있었다
[감상]
골목길 끝에는 누가 사는지 아는지요? 실은 그 골목의 주인은 맨 끝자리에 사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만이 골목의 전부를 거느리니까요. 이 시는 골목길에 대한 서정과 독거노인의 쓸쓸함이 울림을 주는군요. 독특한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경지가 물씬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