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진은영/ 문학과지성사 시인선 (2003)
새벽 세시
하늘에 모자들이 가득 떠다닌다
나무의 빛나는 눈을 덮는다
골목 담장에 따닥따닥 붙어 있는 검은 조개들
입을 벌리고 시간을 삼킨다
불면증 환자는 지금 커다란 장롱 속에서 도망 중이다
무한히 늘어나는 밤의 팔로부터
잠들어 있는 새들을
꿈의 얼룩고양이가 덮친다
늙은 세일즈맨은 잠옷차림에 서류를 들고
축축하고 거대한 버섯들 사이로 갈팡질팡 걸어다닌다
노란 기린이 지하도 밑으로 내려간다
부랑자의 잠든 그림자를 한 입 뜯어먹으러
시계의 분침과 시침 사이에는
침묵의 알이 끼어 있다
네시의 기차가 오기 전에
쓰레기들은 은빛 레일 밖으로 치워진다
[감상]
강력한 이미지가 인상적입니다. 새벽 세시의 풍경을 이처럼 생경하게 풀어내는 솜씨는 익히 그만의 필력으로 보여왔고요.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만큼 괜찮은 시집입니다. 기이한 세벽 세시의 풍경이 추상화처럼 오래도록 들여다보게 만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