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어나니 오후네요.
그래서 내게는 오후만 있는 일요일입니다.
어제 새벽 택시가 목적지를 벗어나
엉뚱한 곳에서 나를 깨웠던 것처럼
막막한 기분이 듭니다. 이는 닦고나 잤는지.
밀린 빨래를 세탁기에 돌리고
커튼을 슬쩍 열어보니
봄비가 내리고 있더군요.
어둑하게 그리고 고요하게
보도블록 위에 물결 파문이
봄꽃처럼 피웠다집니다.
TV 채널 재방송 드라마가 코끝을 찡하게 하거나
어제 아무렇게나 벗어 놓은 청바지가
쓸쓸하게 혁대를 늘어뜨리고 있거나
모니터 옆 '스파이트필립'이라는 화분에게 물 한 컵 건네거나
일요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조용히 시간 밖으로 나를 밀어내는 일입니다.
훗, 심심하다라는 단어 참 생경스럽습니다.
그녀는 태평양을 건너 또 얼마나 멀리 동심원을 그리며
내게로 돌아올까. 짠해지는 이런 생각하다보면
세상의 모든 오후가 일요일만 같습니다.
배달 온 중국음식점 아저씨의 우비에 촘촘히
들러붙은 작은 빗방울들,
그릇을 내놓다가 보니
출입구 바닥에 점점 무늬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봄비가 집안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어디서 왔니?
봄비이기 이전, 구름이기 이전, 수증기이기 이전
바다이기 이전, 강물이기 이전……
일요일, 내가 어디 있는 것인지
내 몸은 내 생각대로 움직여지지만
내가 어디 있는 것인지
혹시 그 생각의 방에 나를 가둬놓고
나이만큼 지난 것은 아닌지,
일요일 오후 세탁기가 헐떡거리며
빨래를 헹궈내는 소리
냉장고 심장소리, 초침을 떠는 시계소리
아,
일요일에는 내가 잊고 있었던
소리가 나를 귀기울입니다.
내가 신경에 거슬린 모양입니다.
일요일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