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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2004.03.04 15:47

윤성택 조회 수:697 추천:13



* 잊고 있었던 게시판에서 내 글을 발견했다.
나는 이제 검은 눈동자의 수집가가 되어
나의 옛글을 찾아 옮겨오고 있는 셈이다.
3년 전 나는, 누구 말대로 씹작생이었다.
지금의 나와 달라진 것이 무엇일까.
나를 머물다간 것들에게
조금 더 외로워졌고
조금 더 쓸쓸해졌지만
그럼에도
이 글이 한 때 나였다는 사실을
인정해야한다. 나는 여전히,
탈피 중이다.


내 삶도 알고 보면


건물 너머 먹구름이 몰려온다.
분명 한 시간 안에 비가 올 것이다.

비소식도 전송되는지
제몸 위로 전선이 지나는 가로수들
척척척! 바람에 잎새 먼지를 털어 낸다.

어저께 갑작스러운 소나기에
구멍가게에서 산 곤색 3단 우산,
쫘악~ 펼칠 것을 생각하니
가방 안이 든든하다.

아는 형은 휴가 첫날,
형수와 싸웠단다.
그 집에 재떨이가 날아다니고
경찰이 다녀갔다.

어쩌면 우리는
삼류를 지향하는지도 모른다.

그 형은 시모임 이후
밤새 술을 마시고 다음날 낮에 돌아갔다.
그리고 산적 같은 팔로
형수를 으스러지게 안아주었을 것이다.

비가 한바탕 내리면
어디어디 삶은 또 그렇게
삼류로 전송되는지,

내 삶도 알고보면 신파 그 자체다.


2001-08-14 오후 4:3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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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에 다녀오면서


우체국에 다녀왔다.
빠른등기를 보내면서
해마다 공모에 응모하면서
겪었던 일련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내가 아는 교수님은 신춘문예만 8년을 떨어지셨다지.
최종심에도 못 올라간 것을 알아버린 날,
박스에 가득 넣은 원고뭉치를 마당에서 태우며
백정마냥 소주를 뿜으셨다지.

화려한 등단.
이게 단지 꿈일 뿐이던가.
복권에 당첨되기보다도 어렵다던
그 당선.

나는 솔직히 문학 속에
내 혈관을 뉘여 놓았던 청춘이
기차의 뒷모습처럼 쓸쓸하지 않기를 바랄 뿐.

얼마동안 정리한 시들을 묶으면서
나는 그 시들은
내 마음으로 부화해서 내 놓은
새끼들이라 생각했다.

민들레홀씨
후~ 하고 불 듯,

잘가라!
내 새끼들.
가서 부디 당당히 맞서고
돌아오거라.


2001-08-23 오후 3:5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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