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시를 새벽 라디오에서 들었다는
분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일기장에 메모를 했었다고
그 시 제목이 그거였다고
이메일과 이메일 끝 수화기를 대고
속삭이듯 일러주더군요.
한편으로 고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끄덕이기도 하다가
시인이 되어서, 그렇게 되고 싶은
시인이 되어서, 나는 새삼 내 삶에게
어떤 詩를 쓰고 있는지
잠시 생각해보았습니다.
내가 떠났던 전공과, 아버지의 눈물,
골방 원고지를 누르고 있던 압정,
몸살 끝에 혼자 마신 수돗물 같은 거.
탕자처럼 고향에 돌아가
보여드릴 희망도 없이 뒷머리만 긁적이다
돌아왔던 그것들에게 나는 무엇이었을까.
자취생활을 정리하고 시골에 돌아가
친구들과 어울려 젓가락으로 추억을 헤집으며
소주잔을 기울이길 며칠 째,
집 지하실에 옮겨 놓았던 이삿짐 박스에서
알람시계가 사흘을 넘게 울고 있었던 사실.
나를 깨우고 아침을 알리던 그 알람이
새끼고양이처럼 가르랑 가르랑 혼자
울고 있었습니다. 건전지도 다 닳았을 터인데
지독하게 죽지도 않고 지독하게.
어쩌면 내가 시를 포기할 수 없었던 까닭은
그 지하실 어둠을 터 주던
알람소리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5년 동안 신춘문예에 떨어지고
낙심했던 그 해 어느 날이었습니다.
살다보면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지요.
그런 것이 두려운 것은 아닐 테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그 상처가 내가 그렇게 되뇌던
마음의 자리였습니다.
그러니 내 좌표는 여기까지입니다.
2003.12.3
하지 말라고 하는 건 한다는 똥고집은 어디서 배웠냐고
핀잔주시는 부모님께 말 못하고 어물쩡 넘어 갔던 때가 생각납니다.
지금도 괜한 고집 부리고 있는 건 아닐까 물어보기도 하지요.
하지만 좋은데...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