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 속으로 난 길」/ 천수호/ 《유심》 2003년 봄호
저수지 속으로 난 길
돌 하나를 던진다 수면은 깃을 퍼덕이며 비상하려다 다시 주저앉는다 저수
지는 참 많은 길을 붙잡고 있다 돌이 가라앉을 때까지만 나는 같이 아프기로
한다 바닥의 돌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돌을 던지고 반지를 던지고 웃음과 울음을 던진다 그러나 물은
한 번 품은 것은 밀어내지 않는다 물 위의 빈 누각처럼 어둡고 위태로워져서
흘러가는 사람들 저수지는 그들의 좁은 길을 따라가지 않는다
삐걱거리는 목어가 둑 아래 구불텅한 길을 내려다보려고 몸을 출렁인다 잉
어는 물 위의 빈집이 궁금하여 주둥이로 툭툭 건드린다 잉어와 목어의 눈이
잠깐 부딪친다 마주보는 두 길이 다르다
떡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가 뒤섞여 길을 이루고 있다 떨어진 잎들이 제
이름을 찾지 못한 채 저수지로 흘러든다 길을 끊는 저수지에 나는 다시 돌을
던진다 온몸으로 돌을 받는 저수지, 내 몸 속으로 돌이 하나 떨어진다
[감상]
저수지를 이처럼 평온하게 크로키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잔잔한 서정이 좋군요. '돌이 가라앉을 때까지만 나는 같이 아프기로 한다'의 표현이 주는 공감대는 더욱 저수지를 매력적으로 만드네요. 턱을 괜 채 그냥 마냥 저수지를 바라보다 보면 내게도 길이 보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