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모월모일 - 박제영

2004.01.30 11:56

윤성택 조회 수:1300 추천:184


<<푸르른 소멸>>- 플라스틱 플라워/ 박제영/ 문학과경계사(근간)



푸르른 소멸·59 - 모월모일


  모월모일 날씨 우울 시베리아를 건너온 북서풍이 골목을 휘돌아 나가고
있음, 이렇게 시작하자,  몇 건의 계약이 취소되고 직원 월급을 위해 은행
대출계에 다녀온 이야기는 빼버리자,  다음 달이면  회사 문을 닫을 수 있
다는 말도 진부하다,  오늘도 어제처럼  퇴근했고  몇 개의 골목길을 지나
집에 돌아왔다고, 저 풍경들,  가령 말들이 매립된 헌책방, 시간들이 파업
중인 시계방, 구두가게의 저,  길 위에서 닳지 못하고 세월 속에서 낡아진
구두들,  그리하여 좌판 너머 풍화되고 있는 표정들만 지나면, 그래 저 골
목길만 지나면  거기 나의 집이 있다는  단순한 사실만을 기록하자,  生이
휘발되었다는 불길한 이야기는 쓰지 말자

  모월모일 영구차 한 대가 시장 골목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감상]
시적 화자의 위치가 인상적인 시입니다. 2연이 있음으로 해서 1연의 진술은 한 사내가 중얼거리는 넋두리라기보다는, 모골이 송연할 죽은 자의 목소리로 들립니다. 사람이 죽고 나서 생각이 있다면 어떤 느낌을 들까요. 세상사 고만고만한 풍경들이 어쩌면 '부질없음'으로 귀착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모월모일은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운명적인 시간입니다. 그 시간에게 어떤 말을 해줄까요.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571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 최갑수 2004.02.14 1695 219
570 마지막 봄날에 대한 변명 - 이영옥 2004.02.12 1487 189
569 홀로코스트 - 배용제 [2] 2004.02.10 1273 195
568 독서2 - 이동호 [2] 2004.02.09 1318 191
567 한밤중의 택시 운전사 - 서동욱 [1] 2004.02.06 1204 212
566 나는 파이프다 - 오자성 [16] 2004.02.05 1426 185
565 무릎에 심은 나무 - 정재학 [1] 2004.02.03 1294 194
564 웅덩이 - 이정록 2004.02.02 1320 167
» 모월모일 - 박제영 [1] 2004.01.30 1300 184
562 저수지 속으로 난 길 - 천수호 2004.01.28 1222 189
561 달의 다리 - 천수이 [1] 2004.01.26 1170 175
560 고등어 파는 사내 - 손순미 [1] 2004.01.20 1188 187
559 캣츠 - 전기철 [1] 2004.01.19 1132 182
558 폭설 - 장인수 [2] 2004.01.17 1327 183
557 연어의 나이테 - 복효근 2004.01.16 1280 173
556 목공소 - 고경숙 [1] 2004.01.15 1058 184
555 상처가 부르는 사람 - 길상호 [1] 2004.01.14 1282 175
554 검은 비닐 봉지들의 도시 - 문성해 [3] 2004.01.13 1305 179
553 홍예 - 위선환 2004.01.12 1131 223
552 안온한 쓸쓸함에 대하여 - 정주연 2004.01.10 1312 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