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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자, 아틀란티스에 기류寄留하다

 

 

      새들은 아무도 기약하지

      않는 곳에 날아가 빈집을 낳는다

 

      - 저녁의 질감부분

 

 

카페 유리문 안으로 저녁이 내리는 중이다. 현재라는 시간에 잠복해있는 과거는 비논리적이고 순서가 없어서 때로 그를 엉뚱한 곳에 착륙하게 만든다. 머리 위로 소복소복 눈이 내리고 있다. 그는 눈 내리는 저편, 유리문 안을 들여다본다. 어딘가 눈에 익은 장소다. 유리창 안을 살피던 시인은 오래 전의 자신과 눈이 딱 마주친다. 오래 전의 그가 물컵처럼 투명하게 이편을 바라보고 있다. 이제 생각났다. “장작난로가 타닥타닥 달아오르는(겨울엽서)” 그곳은 그가 자신을 버리고 온 간이역(기차여행)”이다. 탁자 위 휘청거리는 문장들이 닻을 내리고(저녁의 질감)” 그를 내다본다. 끼익, 그가 낡은 나무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러자 그였던 타인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그가 있던 자리에는 우주를 떠돌던 의자 하나가 놓여 있다. 시인은 탁자 위에 놓인 딱딱한 빵을 갈라 시간의 환부(시간의 환부)”를 열다가 첫눈을 기념하던 성실한 습관(시간의 환부)”을 기억해냈다. 이제 지구의 낭만은 전성기를 지나고 있다, 그가 중얼거린다.

 

      한 사람이 나무로 떠났지만

      그 뒷이야기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어느 날 나무가 되어 돌아온 그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

 

      - 기억 저편부분

 

의자는 나무였던 시절부터 낭만을 알고 있었다. 시인은 우주에서 가장 후진 동네의 의자 위로 내리는 별빛을 본다. “별은 조금씩 내면에 흠집을 내면서 어제와 다른 위치로 명멸”(다시 잠드는 동안)하고 있다. ……, 이런 첨단시대에 별은 후지다. 어떤 것이 후지다는 것은 전성기를 지났다는 것. 사라진 대륙 아틀란티스처럼 그의 내부에도 그렇게 가라앉은 거대한 유적이 있을 것이다.

 

 

      밤하늘 속 탐사선이 가없이 떠가는 상상

      베개에 눌린 안구 안쪽에서 폭풍이 일고

      깊이 묻혀 있던 유적이 드러난다

      보이저 2호에서 판독불능의 신호가 보내지면

      어느 꿈이 황금음반을 틀어주고 있다는 생각

      탐사선이 태양계 끝에 가 있는 것은

      방안에 떠 있는 어떤 입자 속 제국에

      내가 기류하고 있다는 것, 비 오는 밤

      막막한 공간에 음악이 퍼지면

      몇백억 킬로미터 밖 동체가 느껴진다

      나는, 이 우주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내게서 보내온 시간을 견디는 것이다

 

      - 기류寄留전문

 

 

기류寄留란 원래 있어야 할 곳이 아닌 다른 곳에 머물러 사는 것을 뜻하는 단어다. 시인은 잠시 그를 떠난 젊음을 생각하다가 폐허가 남긴 앙상한 미련을 더듬”(아틀란티스)는다. 그의 시는 짙푸른 기억 아래의 기억(아틀란티스)”에 내내 머물고 있다. 왜 그는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선택했던 것일까?

 

 

      등대는 하얀 기둥을 열었다 닫으며

      물결에 열주를 드리운다 바닷속으로

      사라진 그림자들이 조난신호처럼 불빛을 축조하는 밤

      나는 심해로 가라앉은 피아노를 생각한다

      검은건반의 음은 더이상 항해하지 않는다

 

      - 저녁의 질감부분

 

 

난로 위에 달그락 달그락 주전자가 끓고 있다. 그는 언젠가 주전자 뚜껑을 비스듬히/열어놓고/커튼을 내리고/쓰다만 편지를 적(쓰다 만 편지)”은 적이 있다는 걸 기억했다. 그러자 그의 비스듬히 기울어진 어깨가 가늘게 떨린다. 그가 과거에 두고 온 것은 순정을 간직한 비릿한” “청춘이었다(신파). “내내 뜨겁내내 얼얼한 시절을 보내고 이제는 철지난 전단지처럼세상에 붙어있는 존재가 된 그(신파). 그에게도 아득한 소인消印이 찍힌 봄밤(군사우체국)”이 있었다. 그는 천천히 따스해진다.

 

 

      청춘에서 청춘까지 비릿한 것들이 많아서

      비밀의 수위에는 밤들이 넘치고 편지들이 떠다닌다

 

      - 신파부분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은 아름답다. 그를 가로막은 창문은 산화된 필름처럼 하나의 색으로/ 한 장면만 비춰온다(떠도는 차창)”. “수많은 장면이/환등기 안처럼 환해지고(빗소리)”있다. 과거는 때로 산화된 필름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름다운 신기루에 불과하다. 눈발이 흩날리는 저편, 누군가 멀리서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은데 막상 돌아보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은막뿐이다. 이쪽에서는 보이지만 저쪽에서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것이 기억이기 때문이다.

 

 

      바다 속 석조기둥에 달라붙은 해초처럼

      기억은 아득하게 가라앉아 흔들린다

 

      - 아틀란티스부분

 

 

그는 기록이라는 행위에 종사하는 시간여행자다. 그는 사라진 섬이 신화를 기록하듯(거리의 스냅스)” 시간 속으로 사라져버린 내밀한 체험들을 채록해왔다. 하지만 그는 사관(史官)이 아니라 시인이다. 그는 왜 기록을 하는 걸까? 과거는 지나간 시간이고 기록은 지나간 시간을 붙잡아두는 행위이다. 어떤 사건이라도 과거라는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순서를 잃어버린다. 순서를 잃어버린 기억들은 거대한 암흑 속에 섬처럼 혹은 행성처럼 둥둥 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기록되는 시간은 물리적 순서를 따르지 않는다. 지나간 시간은 기록이라는 매개체를 만나면 과거의 속도가 아니라 현재에서 들여다보는 속도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기록하는 행위도 그것을 읽는 행위도 언제나 현재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우리는 살아서 잊는다

      잊어서 아직도 내일이 다가온다

 

      - 부분

 

 

창밖으로 기차가 지나간다. 근처 어딘가에 간이역이 있을 것이다. 그는 간이역에만 가면그늘과 슬픔을 구별하지 못하곤 했다(여행, 편지 그리고 카메라). 지금 그는 커튼이 흔들리는 기차의 차창 밖 풍경으로 서있다. “전동차는 장판의 열선처럼 순환하다가/종착역에서 내리지 않은 이들을/저편으로 실어갈 것이다(환승)”. 그는 곧 기차의 속도로 풍경에서 사라”(응시)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시간여행자의 숙명이다.

 

 

      나는 당신이 알지 못하는 지도 어디쯤에서

      한쪽 눈을 감고 이곳 장면을 저장해간다

 

      - 여행, 편지 그리고 카메라부분

 

여행은 기본적으로 체험이지 기록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기록으로 여행하는 방법을 택했다. 만약 과거의 어떤 사건을 산화된 필름처럼 눈앞을 스쳐가게 내버려둔다거나 그저 기차가 지나가는 장면을 바라보듯 가만히 바라만 본다면 그것은 과거로의 단순한 퇴행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는 펜을 들고 상처 난 과거 속으로 뛰어 들었다. 과거를 기록하는 일은 종이 위에 미래라는 시간의 씨앗을 심는 일이다. 기록하는 행위는 어떤 일회성 사건을 현재형으로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기록을 통해 과거 속에서 온 시간을 우리는 현재 시제로 만날 수 있게 된다. , 기록이 된 과거는 더 이상 한곳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거슬러 우리와 함께 할 수 있게 된다. 시인에 의해 기록된 과거는 많은 다른 이들로 하여금 새로운 세계로 갈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그런 의미에서 기록으로 여행하는 일은 시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여행법이라고 하겠다.

 

      누구나 타인을 데려간 시간 속에서

      그리운 이름이 자신을 데리고 나올 때가 있다

 

      - 떠도는 차창부분

 

 

그는 누군가가 오기를 기다렸으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유리문을 밀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도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는 눈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 모든 것이 끝나는 지점이 어디인지 그는 알지 못했다. 그는 눈 내리는 숲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멀리 눈 덮인 철길과 나뭇가지 위에 앉은 하얀 눈이 점점 지워지고 있었다. 이내 그의 몸마저 투명해졌다.

 

 

      문을 넘으면 과거의 내가 사라지고

      불확실한 내가 만들어진다

 

      - 텔레포테이션부분

 

 

눈을 떴다. 잠이 오지 않는다. 그는 뒤척인다. 절망도 기억이 되면 견딜만하다. 공간과 시간이 그에게 스몄다 흘러나오기를 반복하는 동안, 그는 청춘을 썼고 그 청춘의 행간에는 아직도 시간의 기포가 행성처럼 부유하고 있다.

 

 

      사각사각 시간을 섭취하는 전선들,

      수십 개의 채널이 돌아가고 화살이 꽂힌다

 

      - 채널부분

 

라디오를 틀었다. 그는 순식간에 전파의 숲에 묻힌다(모니터)”. 그는 음악을 듣다가 그가 자신을 둘러 싼 언어의 파장 안에서 사물과 만나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세상의 모든 파는 간섭이다. 간섭이 없다면 세상의 그 어떤 사소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간섭은 이 세계가 돌아가는 원리인 것이다. 빗줄기가 나뭇잎을 때리는 자연현상도 간섭이고 기억이라는 것도 시간에 간섭해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에게 주파수(에 관한 사담들)” , 언어라는 파장은 서정을 무기로 자연에 간섭해들어가는 중요한 시적 수단이 된다. 주파수는 아무것도 해치지 않고 대상에게 다갈 수 있다. 때문에 주파수로 사물에 접근하는 윤성택 식의 간섭은 폭력적이거나 파괴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그는 하나의 파장으로 자연과 사건을 만날 뿐 그들을 왜곡하거나 특별한 순간에 묶어두기 위해 박제가 되게 하지 않는다.

 

 

      별들이 지독한 건 제 빛을 보내

      그 눈빛이 되기 때문이다

 

       - 에 관한 사담들부분

 

 

라디오를 껐다. 과거는 여전히 기포처럼 이곳저곳을 떠돌고 있다. 차례로 명멸해가는 기억의 행성들을 바라보며 그는 어둠 속에 혼자다. 그는 문득, 나이가 들면서 필요한 것은 상상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아름답지만 허약한 꽃잎들은 그가 그 의미를 미처 깨닫기도 전에 거친 세파 속에 그를 남겨두고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그러나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면 아직 꽃이 지기 이전 봄날의 따스한 햇살이 인도하는 세상 속으로 날아가 잠시 꽃대궁 위에서 푸르게 흔들리다 올 수 있다.

 

      나는 도무지 잠들 수가 없어서

      잠든 시간에 가서 나를 깨우고

      맨발로 꿈을 앞세워 한없이 걷는다

 

       - 다시 잠드는 동안부분

 

 

그가 끊임없이 늘어놓는 여행에 대한 사담私談들 속에 등장하는 지명들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곳들이다. 과거는 돌아서는 순간 다시는 갈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린다. 거기서 우리는 인간이 가진 한계를 처절하게 체험하게 된다. 여행에 대한 글로 넘쳐나는 그의 시 속에는 역설적이게도 진짜 여행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그는 가만히 누워 누구에게 물어도 갈 수 없는 방향들에 대해 골똘하게 생각하며 여행할 수 없는 곳으로 여행계획을 세우고 있다.

 

산다는 것은 자주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멈추고 뒤를 돌아다보는 일이다. “운명은 다만 서로 돌아다보는(에 관한 사담들)” 것이니까.

 

 

최형심 시인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박사과정 수료. 2008현대시를 통해 등단. 2009년 아동문예문학상 동화부문 수상과 2012년 한국소설신인상 수상

 

 

- 월간 <시와 표현> 20151월호 (월간지 <시와 표현> 창간호 특집)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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