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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색에 대한 구구한.

2002.05.08 15:59

윤성택 조회 수:141



조그만한 잎새들이
제법 초록색으로 성성해졌다.
갈수록 그늘을 만드는 것에 대해
당당한 플라타너스들.
오늘은 잎새들마다 후광이 대단하다.
나는 나무들을 볼 때마다
왜 길옆에 도열해 있는지 묻고 싶다.
그리고 거기에 줄을 대고 있는 전깃줄을
가지에 휘감지 않는지 따지고 싶다.
그렇다면 가로수는 지금 나를
"공존"이라는 이름으로 가르치고 있는가?

나는 세월에 줄대며 살아오면서
불뚝불뚝 발기되는 욕망의 덩어리를
삶의 구근으로부터 분리하고 싶었다.
조금씩 집착의 향내를 풍기기 때문이다.
하물며 나에게 있어 시는
격렬히 나를 가리키는 풍향계일 뿐
바람이 내게 일러주는 근원을 모른다.

검은색 도화지에다가 갈색을 칠해봐요.
그게 갈색인가요?
내가 머리 염색을 하겠다고 하니까
전문가가 그렇게 말해주었다.

내 나이를 지나간 사람들이 나에게 그걸 가르쳤다.
콘크리트처럼 나는 잘 참아왔다.
나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 볼 것인가?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라고 기형도는 절명했지만
나는 내내 탈색의 의미를 곱씹고 있었다.

색이 이쁘네요. 브릿찌를 넣어야겠죠?
일테면 나는 가을을 만드는 중이었다.
작년 겨울에 악착같이 잎새를 붙들고 있었던
사무실 앞 나무를 나는 유심히 보아 두었다.
그 나무가 이번에도 그런 의지를 보여준다면
이 직장은 오래다닐 만한 곳이다.

거울을 보거라.
나는 단풍을 매단 청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