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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길 위에서.

2002.05.10 23:12

김솔 조회 수:109

태초에 세상은
거미여인의 몸에서 뽑아져 나온
한 길의 부드러운 황톳길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래서 물이나 불에도 길이 있고
허공에도 말言 오가는 길이 있는 것이다.
오월의 가로수에 연꽃이 핀 것도
땅 속에 숨긴 길이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인사동 길 위에서
미술관 순회 버스를 기다리며 살며시
부름켜 부풀어 오른 가로수에 기대었더니
연한 손길 닿은 곳에서부터
몸 속으로 길 하나 자라나기 시작했다.
버스가 남기는 생채기를 덮기 위해
달리는 방향과 정반대쪽으로 뻗어가던 것은
미술관 입구에 다달아 두 갈래로 갈라졌는데
소화되지 않은 욕망들은
구절양장의 아랫길로 가서
무거운 발길에 고이고
어금니 뽑은 生에 대한 회한은
냄새 고약한 트림처럼 윗길로 올라
마른 눈길에 실린다.
그런데 왜 저 앉은뱅이 화가는
매년 개인전을 하는 것일까.
길을 잃으면
가장 친절해 보이는
나무부터 찾아볼 일이다.


* 주말이 되면 또 길을 찾습니다. 모든 길은 연결되어 있어 떠나는 길이 곧 돌아오는 길이라는 걸 믿지만 가끔은 두렵습니다. 가령 순환버스를 어디서 갈아타야 하는지...시인들의 젖은 눈길 위를 걸어 본 기억이 벌써 희미해지는군요...다음 만나면 우리 어깨 걸고 김광석의 <서른 즈음> 한 번 다시 불러 보는 게....헤헤헤...건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