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의 사랑』/ 최갑수 / 문학동네
밀물여인숙 2
바다가 밤을 밀며
성큼 뭍으로 손을 내밀고
아낙들이 서둘러
아이들을 부른다 겨울밤은
폐선의 흔들림을 감당하기에도
벅차고 내 잠을 밀고
촘촘히 올라오는 잡어떼
별처럼 삼십 촉 백열구가 떴다
아직도 잠들지 못한 걸까,
홑이불 속
사고 싶은 것이 많다는 그 여자도
따라 뒤척인다 뒤척인 자리마다
모래알들이 힘없이 구르고
곧 허물어질 것만 같은 등
나는 입술을 대고
그녀의 이름을 낮게 불러본다
그 여자의 등이 조금씩 지워진다
어느 땐가 내가 서 있었던 해변과
사랑하는 것들의 이름을
또박또박 발음해보던
사납던 그 밤도 지워진다
여자의 등에 소슬하게 바람이 일고
만져줄까, 하얗게 거품을 무는
그녀의 얇은 허리와 하루 종일
창문을 벗어나지 못하는 섬
집이 없는 사내들이
모서리 한 켠씩을 차지해
저마다 낮은 어깨를 누인다
지붕 위에는 밤안개가
오래오래 머문다
[감상]
어제 떠났던 막배가 이 섬에 도착한 모양입니다. 지금 밖은 장맛비가 내리고, 시집 속 밀물여인숙에 내 눈길도 따라 투숙합니다. 이 시인의 시편들의 정서가 마음에 듭니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정태춘의 "촛불" 노래가 좋더라고 했더니 어느 분이 은근히 언짢아하더군요. 그 분 술이 적당히 올라오자 그 속내를 털어놓습니다. 너희들 노래가 있지 않느냐, 왜 우리 노래를 네가 부르느냐. 이 황당한 말에 한참을 웃었습니다. 또 누군가는 개성이란 변화와 혁신이라며, 새로움이 없는 낡은 관념의 시를 쓰고 있지는 않느냐고 나에게 묻더군요. 그러나 시란 낯익은 정서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서를 온몸으로 끝 갈 데까지 밀고가야 하지 않을까요. 가랑가랑 시에 젖다가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