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이별 후의 장례식 - 김충규

2002.08.31 11:50

윤성택 조회 수:1217 추천:205

『낙타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 김충규/  시작 시인선(1001)



        이별 후의 장례식



   너를 내 속의 무덤에 묻겠다고 쓴 네 편지를 받고 당혹
스러웠다. 편지를 읽기 전까지 나도 너를 내 속의 무덤에
묻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편지를 찢으며 봉분을 다졌다.
나를 지켜 보고 선 살구나무가 풋살구를 톡톡 떨궜다. 풋
살구를 한 입 깨물었다.  한때 너는 나의 나무에  열려 있
던 붉은 살구였다,  지금은 서로 장례식을  치르지만.  먼
하늘가에서 몰려 온 먹구름이 제 몸을 잘게 찢었다. 우우
우―, 미친 늑대처럼 빗줄기가 울부짖었다.  내 몸은 빗줄
기에 후줄근히 젖어 들었다. 내 속의 무덤은 빗소리에 흠
뻑 젖었다.  한순간,  내 속이 자궁으로 변했다.  망할 것,
나는 너를 낳고 싶었다.



[감상]
내 안의 무덤에 잠든 사람들, 어쩌면 봉분마저 평평한 망각의 바닥으로 스러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의 묘비명이 온전한 것은 나 또한 당신 속에 그리 묻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는 '묻는다'의 발상에서 젊은 날의 번민과 바램을 보여줍니다. 살아 있으면서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만나지 못해서 살아야할 사람도 있습니다. 무덤이 둥근 이유는 알처럼 어딘가에서 다시 부화하리란 믿음일까요. 마지막 행이 울컥 다가옵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291 틀니가 자라는 폐가 - 이혜진 2002.09.02 1121 219
» 이별 후의 장례식 - 김충규 2002.08.31 1217 205
289 환청, 허클베리 핀 - 김 언 2002.08.30 1177 233
288 알레르기 - 장성혜 2002.08.27 1201 206
287 매화 - 최승철 2002.08.22 1468 212
286 옥평리 - 박라연 2002.08.14 1380 244
285 별 - 김완하 2002.08.12 2923 249
284 단체사진 - 이성목 2002.08.09 1482 229
283 달1 - 박경희 2002.08.08 1503 241
282 소쩍새에게 새벽을 묻는다 - 심재휘 2002.08.07 1162 233
281 골목 - 박판식 2002.08.05 1521 194
280 그림자를 가진 새 - 윤이나 2002.08.02 1269 190
279 어떤 연인들 - 도종환 2002.08.01 1390 207
278 귀신이야기1- 김행숙 2002.07.31 1503 203
277 바람 그리기 - 이승하 [1] 2002.07.30 1360 215
276 죽은 사람 - 김형미 2002.07.27 1208 198
275 모기 선(禪)에 빠지다 - 손택수 2002.07.26 1041 187
274 길에 홀리다 - 백연숙 2002.07.25 1165 204
273 베티와 나(영화 37도 2부) - 박정대 2002.07.24 1143 202
272 밀물여인숙 2 - 최갑수 2002.07.23 1135 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