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 김충규/ 시작 시인선(1001)
이별 후의 장례식
너를 내 속의 무덤에 묻겠다고 쓴 네 편지를 받고 당혹
스러웠다. 편지를 읽기 전까지 나도 너를 내 속의 무덤에
묻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편지를 찢으며 봉분을 다졌다.
나를 지켜 보고 선 살구나무가 풋살구를 톡톡 떨궜다. 풋
살구를 한 입 깨물었다. 한때 너는 나의 나무에 열려 있
던 붉은 살구였다, 지금은 서로 장례식을 치르지만. 먼
하늘가에서 몰려 온 먹구름이 제 몸을 잘게 찢었다. 우우
우―, 미친 늑대처럼 빗줄기가 울부짖었다. 내 몸은 빗줄
기에 후줄근히 젖어 들었다. 내 속의 무덤은 빗소리에 흠
뻑 젖었다. 한순간, 내 속이 자궁으로 변했다. 망할 것,
나는 너를 낳고 싶었다.
[감상]
내 안의 무덤에 잠든 사람들, 어쩌면 봉분마저 평평한 망각의 바닥으로 스러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의 묘비명이 온전한 것은 나 또한 당신 속에 그리 묻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는 '묻는다'의 발상에서 젊은 날의 번민과 바램을 보여줍니다. 살아 있으면서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만나지 못해서 살아야할 사람도 있습니다. 무덤이 둥근 이유는 알처럼 어딘가에서 다시 부화하리란 믿음일까요. 마지막 행이 울컥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