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연인들/ 도종환/ 『접시꽃 당신』
어떤 연인들
동량역까지 오는 동안 굴은 길었다
남자는 하나 남은 자리에 여자를 앉히고
의자 팔걸이에 몸을 꼬느어 앉아 있었다
여자는 책갈피를 한 장 한 장 넘기고
남자는 어깨를 기울여 그것들을 읽고 있었다
스물 여섯 일곱쯤 되었을까
남자의 뽀얀 의수가 느리게 흔들리고
손가락 몇 개가 달아나고 없는 다른 손등으로
불꽃 자국 별처럼 깔린 얼굴 위
안경테를 추스리고 있었다
뭉그러진 남자의 가운데 손가락에 오래도록 꽂히는
낯선 내 시선을 끊으며
여자의 고운 손이 남자의 손을 말없이 감싸 덮었다
굴을 벗어난 차창 밖으로 풀리는 강물이 소리치며 쫓아오고
열차는 목행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여자의 머리칼을 쓰다듬는 남자의 손가락 두 개
여자는 남자의 허리에 머리를 기대어 있었고
남자의 푸른 심줄이 강물처럼 살아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감상]
잔잔하게 울림이 이네요. 세심한 관찰도 관찰이지만 상처를 보듬는 이것이야말로 연인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길이 보이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