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티와 나(영화 37도 2부)/ 박정대 / 1990년 『문학사상』 등단
베티와 나(영화 37도 2부)
조금은 어두운 대낮
전기 플러그를 꽂으면 달이 뜨네,
정지된 풍경들 속에서 색소폰 소리가 나네
아, 난 어지러워
무너진 언덕 너머에는
출렁이는 네 어깨와도 같은
신열의 바다가 있네
어디라도 가려하지 않는
바람과 배 한 척 있네
베티,
내 푸른 현기증과
공터의 육체 위에
너의 보라색 입술을 칠해 줘
베티 기억하고 있니
내 어깨 위에 걸려 있던 너의 다리
그 아래로만 흐르던 물결,
물결 속의 달
바람불어,
경사진 사랑의 저 너머에서
함께 출렁거리던
깊고도 위험했던 나날들
기억해?
그때 네 가슴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던
37도 2부의 숨결들
전기 플러그를 꽂으면 달이 뜨네
조금은 어두운 대낮,
막판의 희망이
게으른 새들처럼
엎드려서 울고 있는
* 베티 : '베티블루' 속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 이름
* 달 : 내가 가지고 있는 비디오의 이름
[감상]
영화를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야할 삶의 그 어떤 이면입니다. 그래서 영화는 인간의 수명을 100년 정도 연장시켰다고 봐야 할까요. 영적 진화의 흐름을 쫓고 있는 것이 인생이라면 영화란 그 영상의 대리체험으로 우리를 발육시키고 있으니까요. 같은 70년을 살아도 보아온 것이나 느낀 것이 많다면 그만큼 다른 시대보다 오래 산 것입니다. 이 시는 한 영화를 통해 삶과 영혼을 읽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달"이라는 비디오를 보기 위해 VTR의 전원 플러그를 꽂아야하듯 설정 또한 설득력 있습니다. 영화가 나를 얼마나 진화시킬지, 실감나는 영화 참 많았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