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 홀리다/ 백연숙/ 『문학과경계』 2002년 여름호
길에 홀리다
잰걸음으로 바삐 걷다가도 나는
이쁜 길을 보면 멈춘 채
그 길이 하자는 대로
하고 싶네
내 발목을 잡는 길은
큰길이라기보다 오솔길
양쪽 가생이의 나무 무늬에 기대어
무슨 나무더라? 손때를 묻히며 이리 뜯어보고
저리 세어보고 길을 문 채 날아가
열 갈래 만 갈래 하늘 가득 길을 열어젖뜨리는
새처럼 겨드랑이 속
가벼움이 깃털 돋아나도록 두 팔 치켜들기도 하면서
길섶에 묻어둔 풀벌레 우는 소리에
귀를 열어놓는가 하면 내가 홀리는 길은
또한 옆구리에 호수를 품고 있어 그 뺨 위에
내 얼굴 갖다대다가
산 능선을 타고 내려온 바람이 정작 그 길을 건너다
발을 헛디뎌 호수에 빠질 때면 나도 따라
한드작한드작, 오뉴월 염천이 눈총주면
눈시울 따갑게 그 눈총 다 받으면서 서성거리다가
내가 너의 길이 되고
네가 나에게 길이 되려면
외줄을 잘 타야 한다고 길눈이 어두운 내가 어느 날
염낭거미처럼 둥근 집을 짓기 위하여
바람을 타고 사람들 속에 파묻히는 것이었네
[감상]
길눈이 어두운 그녀는 "모르겠는거야"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또박또박 몇 번이고 알려주었건만, 딴청 피듯 넘어가는 그 말에 피식 웃고 맙니다. 그쯤이었을까요. 이 시에서 길이 하자는 대로하고 싶다는 말, 참 인상적입니다. 초행길은 늘 그러하듯 길이 산을 안내하고 마을을 안내합니다. 정말 길옆의 풍경이 턱을 괴고 실눈으로 맞이할 때 하자는 대로 따라가고 싶어집니다. 너무 밋밋한 길만 따라 왔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