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거친 나무상자 - 안주철

2004.12.01 12:46

윤성택 조회 수:1210 추천:177

「거친 나무상자」/ 안주철/ 2002년 《창작과비평》신인상으로 등단

        
        거친 나무상자

        사과나무 아래에는
        녹슨 전기밥솥과 뒤집어진 양말 한짝
        과수원집의 대문 문고리가
        벌레 먹은 사과 옆에
        떨어져 있고
        빈집 벽에는 내가 그려논
        몇 덩어리의 달이
        풀숲에 엉겨 있는
        김씨와 김씨의 아내를 희미하게
        비추고 있다

        사과나무 그림자는 대문처럼
        사과나무 아래 검게 닫혀 있고

        사과나무 그림자 속으로
        몰래 들어가버린 김씨와
        사과나무 그림자를 버리고 떠난
        김씨의 아내는
        바람이 불 때마다
        사과나무 이파리 사이로
        한입 베어먹은 사과처럼
        옷을 추스르고

        사과나무 아래
        버려진
        거친 나무상자에는
        썩은 사과와 잎들이
        쌓여 있고
        이끼 낀 상자바닥은 축축하게
        사과나무 뿌리에 엉겨붙은
        김씨의 아내의 거웃처럼 젖어 있다

[감상]
퇴락한 과수원집 묘사만으로도 그 내력을 가늠할 수 있는 시입니다. 사과나무가 갖는 상징을 결국 ‘김씨의 아내’의 것으로 몰고 가는 비유도 눈여겨볼만 합니다. 시 속 ‘그림자’가 차지하는 복선도 묘한 재미가 있고요. 그러니 세상 모든 빈집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그것을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는 건, 진정 시인의 몫이겠지요.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711 2005신춘문예 당선작 모음 [8] 2005.01.03 2326 229
710 궤도를 이탈한 겨울, 밤 - 유문호 [1] 2004.12.29 1362 206
709 너무 작은 처녀들 - 황병승 [1] 2004.12.27 1380 210
708 성당부근 - 정 린 2004.12.24 1205 190
707 고려장 2 - 정병근 2004.12.23 1133 197
706 언젠가는 - 조은 2004.12.22 1717 194
705 가구의 꿈 - 조덕자 [1] 2004.12.21 1225 204
704 쓸쓸한 중심 - 이화은 [2] 2004.12.16 1588 179
703 여인숙에서 보낸 한철 - 김경주 [8] 2004.12.13 1515 185
702 그 이발소, 그 풍경 - 고경숙 2004.12.10 1308 215
701 불 꺼진 지하도 - 강신애 2004.12.08 1189 191
700 막돌, 허튼 층 - 이운룡 2004.12.07 1081 202
699 오조준 - 이정화 [1] 2004.12.06 1093 203
698 콩나물국, 끓이기 - 이동호 2004.12.03 1420 202
» 거친 나무상자 - 안주철 [1] 2004.12.01 1210 177
696 voyant - 김춘수 [1] 2004.11.30 1229 192
695 그 저녁 - 김다비 [1] 2004.11.29 1533 217
694 흔적 1 - 황상순 [7] 2004.11.27 1575 207
693 울릉도 - 도혜숙 [1] 2004.11.25 1298 177
692 누가 우는가 - 나희덕 [1] 2004.11.23 1638 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