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숙에서 보낸 한철>/ 김경주/ 《시작》2004년 겨울호
여인숙에서 보낸 한철
한 밤중 맨발로 복도를 걸어가
공동화장실에서 몰래 팬티를 빤다
방으로 돌아와
발가락을 뻗어 스위치를 끄고 누우면
외롭다 미라처럼
창틈의 날벌레들은 입을 벌린 채 잠들고
어제는 터진 베개 솜 같은 눈들이
방안까지 뿌려졌다
내가 마지막이 아니라서
이 이불은 또 펼쳐질 것이지만
피부병처럼 피어있는 이불위의 꽃잎들,
밤마다 문틈으로 흘러온
옆방 기침소리처럼 피가 묻어 있는 것은
*
방안 곳곳 낙서처럼 살다간
사람들 머리카락 몇 줄,
손끝에서 가루로 부서진다
때 절은 하모니카를 속이불로 밤새 닦거나
철지난 주간지 위에 뜬 발톱을 깎아 놓는 일,
배를 잡고 화장실 순서를 기다리며
눈이 튼 사람들과 비린 아침을 주고받는 일은
아름다웠다 저마다의 독채에선
아침마다 작약냄새 환하게 피어올랐다
언제쯤 내 몸을 거절하지 않는 위증이
희망이 아닐 수 있을까
이불속에 들어가 라디오를 끌어안으며
사람들은 산다 허구처럼,
몇 줄의 최전방을 수첩 속에 갈겨 놓은 채
아침이면
나는 촛농처럼 조용히 바닥에 흘러있을 것이다
[감상]
요즘 젊은 시인 목소리에서 이런 주제가 있다니 놀랍습니다. 가난이 시의 재료가 될 순 없지만, 삶의 자리가 그 자체로 새로운 통찰이 될 수 있습니다. 문학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형상을 지닌 채 시인과 가장 가까이 있기 때문입니다. 절망이나 고통에서 더 빛나는 것이 시인 것처럼, 이 시 곳곳 배여 있는 감성적 코드가 감동을 더해줍니다. 가령 ‘외롭다 미라처럼’ 행은 그 자체도 자체지만 앞뒤 연결 부분으로서 빼어난 미적성취가 돋보입니다. 낮은 곳에 처연히 자신을 투사할 수 있는 자세가 부러운 시입니다.
(무슨 말인 줄 알겠는데)
이 부분이 좀 난해하네요.
너무 비비 꼬아 놓아서 어렵네요.
국어 못하는 사람은
이런 데서 티가 확 난다니까. ^^;
"언제쯤 내 몸을 거절하지 않는 위증이
희망이 아닐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