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벼락 속에 집이 있다> / 손순미 / 1997년 《부산일보》신춘문예로 등단
담벼락 속에 집이 있다
그 집은 담벼락 속에 들어가 있다 햇볕이 아무렇게나 흘러
다니는, 담쟁이덩굴이 꽃처럼 피어있는 담벼락을 열어보면
허물어진 집은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다
담벼락 속으로 집이 도망치던 날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
까 집의 내력은 보이지 않고 집이 서 있던 자리, 시퍼런 잡
초와 썩어 나동그라진 기둥들 서로의 뼈를 만지며 세월을 굴
린다
추억은 남아있을까 항아리를 들여다보면 구름이 누렇게 익
어가고 세상은 집이 삭아가는 것을 방관한다
벽 속의 집은 봉긋하게 솟아난다 마당을 건너가는 풍금소
리 몸을 찢어 잎을 내 보내는 나무들 투명하게 널려 있는 빨
래들 우물 속으로 곤두박질친 두레박이 집 한 채를 다 씻어
내는,
집은 벽 속의 곳간에서 제 나이를 꺼내 먹으며 늙어간다
집은 저 벽을 부수고 나와야한다
[감상]
요즘 <빈집>을 형상화한 시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대체로 빈집에 대해 서정적 묘사와 더불어 자의식 내면을 보여주는 형태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시는 그것들과 더불어 <청유(請誘)>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 독특합니다. <집은 저 벽을 부수고 나와야한다>라는 의도가 시적완성도를 높인다라고 할까요. <집>은 그의 본성을 버리고 <담벼락 속으로>도망쳐 버린 것이니까요. 이처럼 인간이라는 관계성을 떼어놓고 볼 때 <집>을 의인화한 것은 매력적인 직관으로 읽힙니다. 그리고 곳곳의 비유도 흥미로운데 썩은 기둥들끼리<서로의 뼈를 만지며 세월을 굴린>다던가, 항아리 속 <구름이 누렇게 익어>간다던가, <몸 찢어 잎을 내보내는 나무> 등 신선한 비유가 눈에 띕니다. 병중인 독거노인을 구출해야할 것 같은, 느낌이 서려 있네요.
담쟁이 덩굴이 집을 감싸고 있는 이미지가 보입니다
전엔 사람이 살았으나 큰 일을 당하고
어떤 사건을 통해 사람들이 서둘러 도망을 쳤나봅니다
부모를 버려두고 떠난 자식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집을 방관하고 떠난 사람들을 왜 그랬을까?
화자도 이유를 모른채 의문인 모양입니다
전엔 마당에서 풍금소리 들리고 하얀 빨래가 날렸겠지요
집 한채를 다 씻어내는 곤두박질친 두레박으로
표현한 빈 집이 인상적입니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연이 좋게 느껴집니다
집은 저 벽을 부수고 나와야한다
집이 상징하는 것이 노인이라고 해도 좋고
집이 상징하는 것이 우리들이 현제 겪고있는 고난같은 것,
해결해야 할 숙제 같은거라고 생각할 때
집은 저 벽을 부수고 나와야 한다는 시인의 메세지가
희망이 있어 참 좋습니다
독자의 시선으로 독자의 느낌을 적어보았습니다 ^^*
좋은시 잘 읽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