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려받은 집> / 최금진 / 2005년 《문학수첩》봄호
물려받은 집
옛날 고향집에 앉아서
산 능선마다 무덤들이 길게 줄지어 달리는 것을 본다
외양간이 있던 곳에
목에 칡넝쿨을 잔뜩 감은 썩은 기둥이 사육되고 있다
마을로 통하는 길은 풀들에게 점령당했다
전신주 통뼈를 감아먹은 후
지붕에 앉아서 입맛을 다시는 덤불들
뒤뜰에 묻힌 내 탯줄을 파먹은 덩굴 하나가
나를 알아보고는 혓바닥으로 손등을 핥는다
가느다란 실금들이 뱅뱅 돌다가 꼬인 내 손바닥,
저희들이 보기에도 콩이파리 같을까
물려받은 거라곤 달랑 이 집이 전부이고
여기서 나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묻었다
공동묘지를 질질 끌면서 덤불들은 마을로 향한다
낡은 서까래에 이빨을 박고 늘어지던
풀줄기의 작은 대가리 하나가
육식공룡처럼 고개를 들어 저무는 하늘을 휘휘 둘러본다
아무도 없다, 나는 다른 사람처럼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내가 무섭다
[감상]
<덤불>의 생명력을 육식성 존재로 나타내는 묘사에 힘이 있습니다. 자연스러우면서 명징한 언어감각이라 할까요. 고향과 가족사라는 주관적 체험이 투영된 <고향집>을 삼키려드는 풀들의 역동성이 강렬해 <육식공룡처럼 고개를 들어> 보이는 대목에서는 섬뜩하기까지 합니다. 사람의 발길이 끊긴 집은 점점 숲의 일부가 되기 마련입니다만, 이렇듯 문학적 진실을 어떤 상상력으로 풀어갈 것인가가 관건입니다. 또한 <물려받은 거라곤 달랑 이 집이 전부>인 화자가 쉽게 떠날 수 없는 마음이, 귀신으로 연상되는 마지막 행은 영화 <식스센스>처럼 돋보이는 반전으로 읽히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