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확인 비행물체> / 박해람 / 2005년 《시현실》봄호
미확인 비행물체
李氏 喪家 마당에
아침부터 미확인비행물체가 조립중이다
이 마을 오랜 전통으로
세상과 세상을 오가는 비행물체
소금을 말에 싣고 설산과 협곡을 돌아 장사를 나가는
티벳의 마방들처럼
아주 슬픈 엔진소리를 내며
서서히 공중부양을 한다
하늘과 땅을 동시에 지나야만 갈 수 있는 그곳을 향해
다 풀고 가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승객의 조립된 이승이 저 안에서
서서히 풀리고 있을까
잠시 고였다 떨어지는 눈물 같은 승객의 일생,
그 염기가
남겨진 이들의 일상에 얼마 동안이나 간을 보탤지
슬픔도 그저 소음일 뿐인 승객에게
배웅 객들이 꽂아준 몇 장 지폐의 효력이 끝나는 곳에 그곳이 있다
가끔 나타났다 사라지는 비행물체
한 번도 승객은 걸어서 타고 걸어서 내린 적이 없다
사람의 뒤로만 왔다가
꼭 사람의 앞으로만 사라지는 승객들
왔다간 일이 소문으로만 남아 있을
지구의 지층이 되는 일만 남은
마을에서는 한 사람이 사라질 적마다
나타났다 사라지는 미확인 비행물체
잠시 내려앉았다 간 포도밭 한 귀퉁이에
새로 생긴 저승이 동그랗게 솟아 있다
[감상]
이씨 상갓집의 상여를 보면서 시인은 UFO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알 수 없는 미확인비행물체임을 확인시켜줍니다. 죽음이 그렇듯 우리는 UFO를 타고 간 저편 세상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다만 <왔다간 일이 소문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겠지요. 어쩌면 이러한 장례절차는 인류의 먼 과거 무의식의 상징적 형태일지 모릅니다. 그래서 상여는 누군가 충격적으로 경험한 인상으로 말미암아 무의식에 묻어온 ‘비행체’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시에 오가는 동안 시인의 사유는, 곡소리를 <엔진소리>로 눈물의 염기를 <일상에 얼마 동안이나 간을 보탤지>로 진전됩니다. 마을에 영혼이 홀연 사라질 때마다 꽃의 날개로 부상하는 미확인비행물체, 그것이 내려앉은 자리마다 흙이 두둑한 미스터리서클이 생겨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