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갠지스로 흘러가다〉/ 은 빈/ 《시와세계》2005년 여름호
갠지스로 흘러가다
비 그친 횡단보도 위에
납작 눌려있는 흰 스프레이 자국,
어딘가를 향해 달리는 자세로 멈춰 있다
사나운 속도가 할퀴고 간 흔적으로
몸에 길을 낸 주검, 젖은 날들이
빛바랜 가방을 움켜잡고 있다
빨간 신호등이 켜진 횡단보도가
한 생의 목덜미를 잡은 채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서 있다
아직 어둠이 내려앉지 않은 길 밖으로
흙탕물을 튀기며 사라지는 자동차들
끌고 온 길들이 서로의 끝을 물고 있다
빳빳하게 굳어 있던 주검이
제 몸 위에 두른 흰 띠를 바라본다
혈혈단신 길 위를 떠돌던 생,
그의 파랑새는 어디로 날아간 걸까
물먹은 가방이 눅눅한 기억을 토해내며
사나운 물살 아래로 떠내려간다
속도를 버린 것들이 창백한 얼굴로 흘러간다
하루에도 수십 번 마음이 바뀌는 신호등이
제 안의 물살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누군가를 넘어뜨리기 위해 부동자세로
서 있는 횡단보도의 중심으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다가오는 사람들, 때로는
길 안에서도 길을 잃을 때가 있다
[감상]
차사고 표시인 스프레이 윤곽에 빗물이 흐릅니다. 응급차에 실려 가면서 미처 챙기지 못했을까요. 빛바랜 가방이 둥둥 떠 있는 풍경이 아련합니다. 갠지스 강은 인도인에게 있어 삶 그 자체이고 윤회의 거대한 힘입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 <제 몸 위에 두른 흰 띠를 바라>볼 수 있는 상상력은 이러한 현실적 고리의 바탕이겠다 싶습니다. 중요한 것은 갠지스 강이 그러하듯, 우리는 비오는 날 누군가 죽어간 강을 건넌다는 것입니다. 횡단보도가 더 이상 길이 될 수 없는 이유는 각박한 도시문명 <하루에도 수십 번 마음이 바뀌는 신호등>에서 알 수 있습니다. <길 안에서도 길을 잃을 때> 갠지스로 흘러드는 믿음은 또 얼마나 절실해지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