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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 - 신용목

2005.08.02 16:08

윤성택 조회 수:1952 추천:230

<틈> / 신용목 / 《문장》웹진 7월호


  

  바람은 먼곳에서 태어나는 줄 알았다 저 태풍의 진로를 거스르는 적도의 안개 낀 바다나 계곡의 경사를 단숨에 내리치는 물보라의 폭포

  혹은 사막의 천정, 그 적막의 장엄

  아랫목에 죽은 당신을 누이고 윗목까지 밀려나 방문 틈에 코를 대고 잔 날 알았다
  달 뜬 밖은 감잎 한 장도 박힌 듯 멈춘 수묵의 밤 편지지 한 장도 밀어넣지 못할 문틈에서 바람이 살아나고 있었다 고고 고 좁은 틈에서 달빛과 살내가 섞이느라 바람을 만들고 있었다

  육체의 틈 혹은 마음의 금

  그날부터 한길 복판에서 간절한 이름 크게 한번 외쳐보지도 못한 몸에서도 쿵쿵 바람이 쏟아져나왔다

나와 나 아닌 것, 삶과 삶 아닌 것이 섞이기 위해 명치끝이 가늘게 번져 있었다


[감상]
시가 대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면 사유가 치고 나갈 곳이 없어 갑갑합니다. 이 시는 <명치끝>이라는 내면의 본질에 이르기 위해, <틈>으로 연상되는 소재들을 꿰뚫고 뻗어가는 상상력이 분방합니다. 마치 <문틈>을 말하기 이전 <바람>에 대한 해석부터 바로하고 시작하자는 듯 거침없습니다. <좁은 틈에서 달빛과 살내가 섞이느라 바람을 만들고 있었다>의 구절이 말해주듯, 습관적이다 싶을 풍경의 재현에서 벗어나 추상과 구체의 공존을 이뤄냈다고 할까요. <적막의 장엄>이라는 관념과 <편지지 한 장도 밀어넣지 못할 문틈>이라는 묘사에서, 이 시의 독특한 조형력과 새로움을 엿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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