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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림모텔 - 류외향

2005.08.08 13:47

윤성택 조회 수:1408 추천:220

<풍림모텔> / 류외향 / 《현대시》 2005년 8월호


  풍림모텔

   사철탕집이 즐비한 그 골목엔 풍림모텔이 있다 들녘을 달려온 바람이 모텔 외벽에
부딪혀 중심을 잃고 골목 어귀를 돌아나가지 못할 때 그땐 이미  사철탕집의 지붕 너
머로 붉은 달이 떠오른 뒤였다 마른 어둠이 몸 뒤채는 소리가 깊어질 때 나는 풍림모
텔로 들어갔다  한 그루 은행나무의 손을 잡은 채였다 수천 년을 걸어 그에게로 갔다
오체투지로 다가가 그녀의 속살을 더듬어 물기 마른 나이테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내
손이 그의 허리를 스칠 때마다  그녀의 몸에서 일찍 태어난 잎들이 침대 위로 떨어져
내렸고 커튼을 젖히고 들어온 바람이  그 잎들 위를 자분자분 걸어다녔다  그의 입술
이 벌어질 때마다 전생과 후생의 언어들이 비밀스럽게 내 귓바퀴를 간지럽혔고 우수
수 일어선 잎들이 공중을 떠다녔다 잎들의 소용돌이,  푸른 블랙홀 속에서 우리는 전
율했다  사철탕집 지붕 너머에서  미열 같은 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풍림모텔을
나왔다 한 그루 은행나무와 손을 꼭 잡은 채였다  우리를 따라나온 바람이 골목 어귀
를 휘몰아쳐 갔다 내 몸에 잎이 돋고 있었다


[감상]
개고기 파는 음식점이 즐비한 골목의 모텔, 이 욕망이 공간에서 <풍림모텔>은 시적 언어로 새롭게 형상화됩니다. 성적 욕망을 풀어내는 모텔이라는 장소가 <은행나무>와 관계하여 아름다운 서정이 잉태되는 <푸른 블랙홀>로 전율합니다. 흔히 볼 수 있는 모텔 앞 오래된 은행나무에서 영감을 얻고, 오관을 열어 그 대상과의 자극을 온몸으로 감응하는 표현들이 인상적입니다. <은행나무와 손을 꼭 잡은> 화자의 몸에 잎이 돋고 있는 건, 생명 원리에 의한 건강한 전이가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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