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무화과나무를 찾아서> / 이성목 / 1996년 《자유문학》으로 등단
꽃, 무화과나무를 찾아서
그대, 꽃다운 나이에 꽃피지 못하고
불혹에 다다른 나를 찾아왔네.
불볕처럼 뜨거웠으나, 지금은
사라져버린 봄날에 대하여 말해 주었다네.
이미 가지에는 과일이 농하고
나는, 꽃을 기억하지 못하는 불구가 되었다는 것도
늦었다. 너무, 늦었다.
지친 잎들이 붉은 얼굴로 나를 뛰어 내렸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네.
꿈에 조차 볼 수 없던 것이 만개였으니,
모든 꽃들이 결국 지고 마는 것이라 해도
나는 받아들이려네.
세상의 뒷마당 한 구석에 얕게 내렸던
나무뿌리 뻐근하게 힘을 주는 동안만이라도
순간만이라도
[감상]
무화과는 열매의 안에서 꽃이 핍니다. 그래서 외관상으로는 꽃을 볼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을 안다 해도,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 앞에서 열매를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열매가 진 자리에 잎사귀가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이 시는 이러한 무화과의 속성을 비유로 맞물려 놓습니다. 운명처럼 만났으나 <지친 잎들이> 무성한 불혹에게 다가온 사랑은 <늦었다. 너무, 늦었다>의 안타까움입니다. 더더욱 <나는 받아들이려네>, <순간만이라도>의 마음에서 꽃필 수 없는 아픔이 있기에 더욱 외로운 사랑을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