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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생활 - 박후기

2005.08.24 10:37

윤성택 조회 수:1582 추천:226

<탐구생활>/ 박후기/ 2003년 《작가세계》로 등단



       탐구 생활
             - 사춘기

        1
        어째서
        문제지의 정답은 맨 뒷장에 적혀 있는 걸까

        철조망 옆 무덤가에 누워
        문제지를 펼치고 시험공부 할 때,
        미군들이 제 나라 말을 하며 지나갔다

        헬리콥터 소리가 그치지 않았고
        나팔꽃들은
        귓불을 잡아당겨 귓구멍을 틀어막았다

        2
        그녀가
        삼거리 자취방으로 나를 이끌던 날,
        나는 옷을 입은 채 바지만 내렸다

        어둠 속에서
        헬리콥터 소리가
        먼지 낀 창문을 두드리며 지나갈 때,
        금 간 유리창에 들러붙어있던
        스티커 별들이 바르르
        몸을 떨었다

        청춘 박명(薄明) 속에 누워
        나는
        그녀가 깨지 않을 만큼만 팔을 움직여
        문제지를 풀었다

        3
        어째서
        문제지의 정답은 맨 뒷장에 적혀 있는 걸까

        문제 하나를 풀 때마다 나는
        기다란 종잇장을 넘겨가며 뒷장에 적힌
        정답을 확인했다

        문득
        다음 문제의 답을 미리 외워버렸고,
        그렇게
        사춘기는 지나가고 있었다


[감상]
누구나 다 사춘기에서 걸어 나왔고, 사춘기를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갑니다. 이 시는 과거 시대의 풍경을 잔잔한 회상으로 펼쳐 놓습니다. 다른 나라 군인이 주둔하는 나라, 사지선다형 문제에 익숙했던 입시위주 교육 환경, 성에 대한 첫경험… 이렇듯 “어째서/ 문제지의 정답은 맨 뒷장에 적혀 있는 걸까”라는 사춘기 호기심을 풀어가는 흐름이 아슴아슴 유년을 더듬게 합니다. 사춘기와 첫경험, 그 풋풋했던 시절에서 우리는 얼마나 지나온 것인지 생각해보게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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