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 박후기/ 2003년 《작가세계》로 등단
탐구 생활
- 사춘기
1
어째서
문제지의 정답은 맨 뒷장에 적혀 있는 걸까
철조망 옆 무덤가에 누워
문제지를 펼치고 시험공부 할 때,
미군들이 제 나라 말을 하며 지나갔다
헬리콥터 소리가 그치지 않았고
나팔꽃들은
귓불을 잡아당겨 귓구멍을 틀어막았다
2
그녀가
삼거리 자취방으로 나를 이끌던 날,
나는 옷을 입은 채 바지만 내렸다
어둠 속에서
헬리콥터 소리가
먼지 낀 창문을 두드리며 지나갈 때,
금 간 유리창에 들러붙어있던
스티커 별들이 바르르
몸을 떨었다
청춘 박명(薄明) 속에 누워
나는
그녀가 깨지 않을 만큼만 팔을 움직여
문제지를 풀었다
3
어째서
문제지의 정답은 맨 뒷장에 적혀 있는 걸까
문제 하나를 풀 때마다 나는
기다란 종잇장을 넘겨가며 뒷장에 적힌
정답을 확인했다
문득
다음 문제의 답을 미리 외워버렸고,
그렇게
사춘기는 지나가고 있었다
[감상]
누구나 다 사춘기에서 걸어 나왔고, 사춘기를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갑니다. 이 시는 과거 시대의 풍경을 잔잔한 회상으로 펼쳐 놓습니다. 다른 나라 군인이 주둔하는 나라, 사지선다형 문제에 익숙했던 입시위주 교육 환경, 성에 대한 첫경험… 이렇듯 “어째서/ 문제지의 정답은 맨 뒷장에 적혀 있는 걸까”라는 사춘기 호기심을 풀어가는 흐름이 아슴아슴 유년을 더듬게 합니다. 사춘기와 첫경험, 그 풋풋했던 시절에서 우리는 얼마나 지나온 것인지 생각해보게 되는군요.
때로는 밀렸다가 개학날 임박해
한꺼번에 해야했던 탐구생활이나
일기가 생각나는 즈음입니다.
세월이 지나 이름은 탐구생활에서
EBS 방학생활로 바뀌었어도
세상물정 모르는 아이들에겐
유익한 교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가 봐도 재밌는 프로이기도 하구요. ^^
초등학교 때 친구를 만난 듯한 반가움,
오랜만에 탐구생활에서 찾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