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그림 속에서 들리는 허밍
모두 잠들어버린 밤
거실 바닥으로 어질러진 크레파스를 집어
스케치북 속에 나를 그려넣는다.
그럴 때면 왈칵, 외로워져
스스로를 위한 위문 공연
허밍을 분다.
캄캄한 밤이면 누구나
아무렇게나 팽개쳐진
젖은 수건이거나
뚜껑이 열린 물병이거나
허리 부러진 크레파스가 되어
어둠 속에서 쓸쓸히 코로 노래를 부른다.
입은 어디에 두고 코로 노래하는가?
가지 못하고 끊어진 말과 사랑이
그리다가 멈춘 그림이 되어 하얗게
스케치북 속에 머문다.
그러한 것인가?
정녕 하고픈 말들은 완성되지도 못하고 헝클어진
허밍이나 밑그림 같은 것인가?
이 밤, 나는 너에게로 건너가지 못했는데
흰 여백 사이로 캄캄한 어둠만이 절벽이 되어 일어선다.
*흐르는 곡 - Nightnoise / Lully Lullay
글과 음악의 분위기가 비슷하다싶어 친구해라 하고 서로 아침에 어깨동무 걸쳐 두었더니 글이 엉성해서인가? 서로 통성명도 주지 않고 음악이 어둔밤 그만 길 떠나버렸네. 흑흑, 내 음악 나오지 않는구나 ㅜ.ㅜ 그렇구나. 늘 예고편 없이 떠나가는구나. 잘되었다. 어차피 글은 제 얼굴로만 빛나고 싶었을 뿐이었으니, 아마 음악도 어디론가 가서 저 혼자 잘 먹고 잘 살고 있을게야. 앞서 떠날 수 있는 용기는 늘 쓸쓸하지. 밤잠을 설친 영화 감독의 래딧고- 소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