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소에서」/ 마경덕/ 현대시 2003년 11월호
목공소에서
희고 매끄러운 널빤지에 나무가 걸어온 길이 보인다. 나무는 제 몸에 지도
를 그려 넣고 손도장을 꾹꾹 찍어 두었다. 어떤 다짐을 속 깊이 새겨 넣은
것일까. 겹겹이 쟁여둔 지도에 옹이가 박혔다. 생전의 꿈을 탁본 해둔 나무,
빛을 향해 달려간 뿌리의 마음이 물처럼 흐른다.
퉤퉤 손바닥에 침을 뱉는 목공. 완강한 톱날에 잘려지는 등고선. 피에 젖
은 지도 한 장 대팻날에 돌돌 말려 나온다. 죽은 나무의 몸이 향기롭다.
[감상]
나무의 나이테를 '지도'와 '손도장' 등으로 바꿔낸 것이 이 시의 포인트입니다. 세상 하찮은 소재일지라도 시인의 눈을 통해 누구나 들을만한 솔깃한 감동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詩가 이 지상에 존재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나무를 통해 우리 또한 내면의 지도를 더듬어보게 된다면, 우린 또 얼마나 향기로운 죽음을 맞이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