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김완하 / 『시작』 2003년 겨울호
너
너로 하여 세상을 밀고 가던 때 있었다
너를 의탁하여 가파른 벼랑 위에
나를 세우고, 아찔
아찔 그 어질머리에 기대 있을 때 있었다
너를 따라가던 때
너를 업고 가던 때도 있었다
너 이놈, 술
[감상]
생각해보니 '술'만한 녀석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남자의 삶에 있어서 술이 갖는 상징은 그야말로 엄청난 메타포입니다. 이렇듯 이 시는 이러한 시선을 투영시켜, 간결하면서도 명징한 사유를 보여줍니다. 술이 과하게 되면 누구든 건강의 '벼랑'에 서게 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술은 평생을 따라다니며 삶의 언저리에서 수많은 감정들과 함께 할 것입니다. 그러니 '너를 따라가'기도 '업고 가'기도 해야하는 것입니다. 미워할 수도 그렇다고 기뻐할 수도 없는 그 감정의 간극을 '너 이놈, 술'로 점철해내는 마무리가 인상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