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김행숙/ 문학과지성사
문은 안에서 잠근다
후려갈기듯이 그가 문을 닫았다고 생각했을 때, 문은 제대로 닫히지 않았다 문은 반발(反撥)하여 조금 열린 채 떨리고 있었다 그가 부르르 떨고 있는가? 오래 참으셨군, 나는 빈정거렸지만
나는 바닥을 드러낸 채 그의 침대에서 너무 오래 기생했다 두께 없는 얄팍한 사랑을 원고지 구기듯이 했네 나는 썼지만
구겨진 그를 펴서 다시 읽고 싶지 않았네 나는
썼지만 그는 때때로 아, 벌어져 있었네 그의 침대에서
나를 핥고 지나가는 문장들을 나는 너무 쉽게 받아들였네 그가 없는 그의 침대에서
나는 뜨거워지지, 그러니 그가 없는 그의 침대에서 참을 수 없었네 오래 참으셨군,
나는 빈정거렸지만 내가 나쁘지 않은가?
문을 닫았다고 그는 믿지만 문의 반동(反動)은 그의 행위에서 비롯하니, 이것이 내가 받은 교훈의 전부다
이제 내 낙서는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다시 바람이 나침반인가? 문이 자꾸 펄럭이니 문 밖의 풍경은 빠르게 늘어났다가 줄어들고 늘어…… 나는 중얼거린다,
문은 안에서 잠근다.
[감상]
그와 나, 그리고 성적인 메타포가 강렬한 시입니다. 문을 닫고 나가는 몫이 그의 것이라 생각되겠지만 사실은 세상에 그를 가둔 것은 화자인 셈입니다. 어찌보면 페미니즘적인 성향으로도 여길 수 있는데, 그것보다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상력에 더 무게가 있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안과 밖을 시인의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는 조형감각이 뛰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