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타샤를 추억함」/ 김진하 / <시와시학> 2000년 봄호로 등단
나타샤를 추억함
소주잔이 비워지고
싸락싸락 눈이 쌓인다
놋종을 흔들며 눈발 속에
걸어오는 사람 누굴까
구붓하게 걸어 들어오는
그 사내 품에 안겨
고조곤히 잠들었으면
어쩌면 그의 아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그의 시를 쏘옥 빼닮은
흰당나귀 울음소리
눈보라 들이치는
흐린 저녁이면
나타샤의 이름으로
세상 모든 가난한 애인들의 이름으로
백석의 마을에는, 사철
폭설이 내린다
[감상]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의 백석 시를 모티브로 삼아 쓴 시입니다. 오늘밤 눈이 내리는 까닭은 가난한 내가 나타샤를 사랑해서라는, 필연이 인상적이지요. 이 시는 전반부 여성화자를 등장시켜 눈 내리는 저녁 선술집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아울러 백석의 마을은 겨울 한철이 아니라 사시사철 폭설이 내린다는 상상력으로 나타샤를 추억 속에 영원히 살아 있게 만듭니다. 어제께 첫눈이 내렸습니다. 그 새벽 아름다운 당신을 사랑해서 눈이 내렸다면 어쩌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