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임신시켜 놓고 차버릴 수도 데리고 살 수도 없는 여자와 같다. 영화 '태양을 가득히'에서 아무리 도망쳐도 시체가 떠오르듯, 시를 버리는 어떤 알리바이도 성립하지 않는다. 나는 비극적일 수 밖에 없다." - 이성복.
그런데 왜 나는 비극이 좋을까.
매일 나는
석녀의 자궁 속에서
모래탑을 쌓다가 깨어나서는
더럽혀진 원고지를
어찌해야 하는지 몰라
손가락만 물고 있지.
아직도 비극은
빙하기 이전부터 살아온
우리를 지켜낼 수 있을까.
내가 가라앉은 만큼
세상이 떠오른다면.
고래의 무덤을 찾고 싶어.
비극적으로 죽은 그들 때문에
나는 지금 육지에 올라와 있을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