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하루 종일, 내내 비가 내리는군요.
끈질기게 뿌리내려 보겠다는 듯 내리던 비가
사무실 벽 한쪽을 타고
기어이 자기의 족보를 그려냈습니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으나
몇 개월도 안된 새 건물에 물이 샌다고
하자보수, 설계변경
글자들이 짝맞춰 기안문서 활자로 박힙니다.
비가 왔다고 인근 공사장 함바집 주인이
빈대떡을 부쳐왔습니다. 뜨근뜨근한 그것이
내 마음만 같아서 마침 막걸리 한 잔
비워냈습니다. 퇴근시간은 다가오는데
이사회 회의 안건은 왜 그리 많은지
회의록은 하나의 안건씩 둥둥 떠내려가
자꾸 딴청으로 건져졌습니다.
비가 오는 줄도 모르고 어제는
밤늦게까지 그리움이라든가
사랑이라든가 인생이라든가
몇 글자씩 타박거렸습니다.
낯설고 생경한 계단이 많은 마을에
다녀온 뒤로는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습니다.
비가 너무 와서
밖은 온통 흐르는 것만이
내력을 깊게 합니다.
설계변경 안 됩니다.
하자보수 하셔야겠네요.
우물에 깊게 드리워진
보청기 같은 두레박 하나
간절해지는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