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언어(부제: 장에 가는 길) / 김순진
시인의 언어(부제: 장에 가는 길)
김순진
엄마를 따라 오일장에 갑니다.
악수하는 그림의 미군 구호품 밀가루 자루에
붉은 팥 두 말을 담아 머리에 이신
엄마를 따라 십릿길 장에 갑니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엔 볏그루 움튼 싹 파랗고
비포장 신작로가 깡마른 코스모스 대공 까
입에 넣고 쫀득이하며 따라 가는 길
나무 전봇대 성큼성큼 따라옵니다.
'엄마! 제가 메고 갈께요.'
엄마가 안쓰러워 몇 번이나 졸랐더니
'그래라, 우리 아들 얼마나 자랐나 보자.'
팥자루를 넘겨 주십니다.
우쭐한 마음으로 팥자루를 어깨에 얼러메는데
병기 수입포 누덕누덕 덧 꿰멘 자리
무명실이 양잿물 빨래에 삭아
터지고 말았지 뭐에요?
붉은 팥 한 알에 종기, 붉은 팥 한 알에 부스럼,
붉은 팥 한 알에 허기, 붉은 팥 한 알에 허깨비,
붉은 팥 한 알에 가난, .......
그 나머지는 모두 사랑이지요.
내 다우다 잠바를 벗어
모래밭 신작로에 흩어진 팥을 주워 담습니다
그 때 주운 붉은 팥을 액땜으로
이만큼의 언어들을 줍고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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