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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엽서 - 안상학

2003.12.11 10:28

윤성택 조회 수:1281 추천:182

『오래된 엽서』/ 안상학 / <천년의 시작> 시인선


        오래된 엽서
        

        오래된 어제 나는 섬으로 걸어 들어간 적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엽서를 썼다. 걸어 들어갈 수 없는
        그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며 뭍으로 걸어나간 우체부를 생각했다.
        
        바다가 보이는 종려나무 그늘에 앉아
        술에 취해 걸어오는 청춘의 파도를 수없이 만나고
        헤어졌다, 그러나 단 한 번 헤어진 그 사람처럼 아프지 않았다.
        
        섬 둘레로 저녁노을이 불을 놓으면
        담배를 피우며 돌아오는 통통배의 만선깃발, 문득
        돌아오지 않는 그 사람이 걸어간 곳의 날씨를 걱정했다.
        
        아주 오래된 그 때 나는 섬 한 바퀴 걸었다. 바다로
        걸어가는 것과 걸어 들어가는 것을 생각하다 잠든 아침
        또 한 척의 배가 떠나는 길을 따라 그곳을 걸어나왔다.
        
        아주 오래된 오늘
        오래된 책 속에서
        그 때 뭍으로 걸어갔던 그 엽서를 다시 만났다.
        울고 있다. 오래된 어제 그 섬에서 눈물도 함께 보냈던가.
        
        기억 저 편 묻혀 있던 섬이 떠오른다. 아직 혼자다.
        나를 불러, 혼자 있어도 외로워하지 않는 법을 가르치던 그 섬
        다시 나를 부르고 있다. 아직도 어깨를 겯고 싶어하는 사랑도 함께.


[감상]
오래된 엽서를 발견하고 한참을 들여다보는 것. 그리고 그 과거로 서서히 걸어가는 것. 그리고 아슴아슴 그때 사랑을 느껴보는 것. 그리고 그 세월만큼 지나온 궤적 어딘가 있을 당신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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