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안시아 / 『시작』2003년 겨울호
의자
바닷가 선창,
다리 하나 부러진 의자가 있다
거뜬히 서 있을 수 있다는 듯
세 개의 앙상한 다리만으로도
텅 빈 허공을 버티고 있다
다리를 잃은 후 스스로 버려져
이곳까지 떠나왔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의자는 어느 곳 하나
은밀한 곳이 없다 오직
버티기 위해 살아왔을 뿐,
그 꼿꼿한 중심이 평생 의자를
의자로만 눌러 앉힌 것이다
의자에 앉아본다
으랏차차! 무게중심이 급기야
잃어버린 다리 쪽으로 엉덩방아를 찧게 한다
멍울진 자리 덮어주던 파도가
흠칫 놀라 한 걸음 밀려나간다
이제 의자의 중심은
그 위에 앉는 엉덩이의 몫이다
스스로 중심을 잡는 사람만이
의자를 쓰러뜨리지 않을 수 있다
의자에 앉기 전 언제 한번
의자를 배려한 적 있었던가
다시 의자를 세워 놓는다
다리가 세 개이고도 여전히 의자인 의자 하나가
부러진 다리의 무게중심을 서로 나눈 채
바닷바람을 버티고 있다
의자가 걸터앉은 백사장을 보라
중심 없는 것들만 휩쓸려 다닌다
[감상]
버려진 의자에 대한 사색과 탐구, 또한 자기의 것으로 전이시키는 솜씨가 좋은 시입니다. 의자에 대한 '배려'를 생각해내는 것이나, 중심에 대한 고민 끝에 '중심 없는 것들'과 변별되는 삶을 넌지시 꾸짖는 결미가 좋습니다. 시적 대상을 관찰하거나 소묘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 화자인 나를 등장시켜 활동케 하는 것도 정적인 흐름에 활기를 불어넣는 시도일 것입니다. 혹시 나는 다리가 세 개인 의자만 탓하며 중심 없이 흘러온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하루의 절반을 의자에 받쳐 살면서, 그 중심을 모른 채 때론 개처럼 다리를 떨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