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 조정 / 『문학마당』 2003년 겨울호
불면
홀연히 깨어난다
풋감이 떨어져 양철지붕에 구르는 동안
내가 이동해 온 거리는 백만 광년이 넘을 텐데
다리는 아프지 않고
저녁 먹고 마늘 대를 벗기던 손톱 밑이 아리다
어디까지 가다가 돌아 온 것일까
내 생전의 손을 들어 짚어보는 창 밖에 어둠이여
밤배가 떴다
집어등이 파랗게 떨며 밤새 마음이 아픈 물고기를 낚아
지붕 위로 던진다
검은 배경을 두르고 빛나는 검은 물결과
몸을 퍼덕이며
서서히 죽어가는 물고기들의 숨소리를 따라
사람들이 잠결에 흐느낀다
오늘은 아이가 병중이고 내일은 밭에 마늘잎이 마르고
다음날 역시 잠들지 못한 채
귀만 얇아져
물고기들이 힘을 다하여 양철지붕을 치는 소리를 듣는다
영영 도착하지 않을지도 모를 불운의 소식을 듣는다
(이제 잠이 들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수평선에 걸려 오도가도 못하는 섬들이
파도를 끌어올려
손등을 긁는다
[감상]
잠이 오지 않는 밤, 풋감이 떨어지는 창밖 풍경을 어선과 집어등으로 표현한 시입니다. 집어등은 '파랗게 떨며' 빛나고, 감잎들은 '물고기'가 되어 지붕에서 뒤척입니다. 그럼에도 이 시의 매력은 '백만 광년'넘게 달려온 별빛을 화자로 슬쩍 바꿔내는 솜씨와, 자다 일어나 손등을 긁는 모습을 '섬들이 파도를 끌어올려'로 표현해내는 능력에 있습니다. 마늘이 그토록 아렸던 까닭은, 마늘밭에 불시착한 별빛이 오롯이 스며들었기 때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