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구의 풍경」/ 강수 / 『현대시』 2003년 12월호
포구의 풍경
지옥의 불덩이가 수평선에서 고요히 떠오르기 시작하는 새벽,
어떤 이는 빈 손으로 돌아와 소주 한 잔 하러 가고
어떤 이는 고래를 잡고와 큰 웃음을 짓는다.
그 웃음 속에는 잠시 아름다운 무지개가 뜨지만
그는 언젠가 또 고래를 잡으러 떠날 것이고
그때, 그는 지금까지 잡은 것은
고래가 아니라 고래의 허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고래가 만들어 띄운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띄운 허상이라는 것을 알게 될 지도 모른다.
사실, 그는 고래를 잡는 게 즐거운 것이 아니라
다시 잡으러 떠날 수 있는 고래가, 바다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이
즐거운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고래가 그이 손을 거쳐갔지만,
그는 아직까지 고래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직도 그의 고래는 물기둥을 뿜어 올리며
그의 눈길이 가는 곳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의 손에 묻은 고래의 피가 사실은 자신의 피인지도 모른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새벽부터 불을 켜놓은 집들, 집어등처럼.
또 다시, 사내들이 출항(出港)을 하고 있다.
[감상]
'고래'라는 상징을 생각하게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고래를 잡는다는 행위는 사내들의 거친 삶과 희망이라는 맥락에 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송창식의 유행가가 그러하듯 이 시는 현대인이 살아가는 그늘과 억압을 직시하고 '출항'을 통해 새롭지만 고독한 하루를 밀고 가는 가장들을 보여줍니다. 그러니 이 시에 등장하는 '고래'는 삶이 육화된 자리에 존재하는 메타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