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의 벽화」/ 류인서/ 《현대시학》2003년 7월호
거울 속의 벽화
대합실 장의자에 걸터앉아 심야버스를 기다린다
왼쪽 벽면에 붙박인 거울을 본다
거울의 얼굴엔 마치 벽 속에서부터 시작된 듯한
뿌리깊은 가로금이 심어져 있다
푸른 칼자국을 받아 두 쪽으로 나뉘어진 물상들
잘못 이어붙인 사진처럼
하나같이 접점이 어긋나 있다
그녀의 머리와 목은 어깨 위에 서로 비뚜름히 얹혀 있다
곁에 앉은 남자의 인중 깊은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멈춰선 톱니바퀴처럼 비끗 맞닿아 있다
그 무방비한 표정 한 끝에 아슬하게 매달린 웃음을
훔쳐보던 내 눈빛이, 스윽
균열의 깊은 틈새로 날개꼬리를 감춘다
물병에 꽂힌 작약, 소스라치게 붉다
일그러진 둥근 시계판 위에서
분침과 시침이 포개 잡았던 손을 풀어버린다
이 모든, 아귀가 비틀린 사물들 뒤에서
아카시아 어둔 향기가 녹음의 휘장 속에 어렴풋 속을 보이고
그렇게 조금씩 제 각도를 비껴나고픈
자신과 화해할 수 없는 것들의 초상이 벽 속에 있다
[감상]
심야버스를 기다리며 시인은 대합실 깨진 거울을 들여다봅니다. 거기에 맺혀진 물상들의 뒤틀림을, 이 시는 섬세한 감성으로 읽어냅니다. 심야버스를 타야 하는 여정을 생각하면 여행이란 세상의 풍경을 제 몸에 투사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자신과 화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인식하고 비틀린 것조차 자신의 초상으로 받아들이는 말미가 인상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