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모양의 얼룩」/ 김이듬 / 『시와사상』 2003년 겨울호
별 모양의 얼룩
베란다다 이불을 턴다 소녀가 떨어진다 무거운 수명들과 단단한
골격의 냄새가 묻은 이불을 털다 한 여자가 떨어져버린 저녁, 피
가 번지는 잿빛 구름속으로 타조 한 마리 날아가는 지방 뉴스가
방영되고 기차를 타고 가던 그들도 앞부분이 무거운 문장의 자막
을 읽게 될 것이다
순식간이다 얼룩이 큰일이다 이불을 뒤집어쓰면서 추위는 시작
된다 냄새나고 화끈거린다 두근두근한다 몰래 홑청을 바꾸고 펴
놓았다 개킨다 올리다가 다시 내린다 이불 속 깃털을 뽑는다 큰
타조의 날개는 사라지고 발간 민머리 누더기, 이상한 얼룩이 묻은
이불은 논리가 없다 귀찮아 걷어찼다가 다시 껴안는다 제대로 꿰
매지지 않는 기억은 비벼댈수록 스며들고 씻을수록 번져간다 어
느새 늙고 추악한 소녀를 돌돌 말고 있다
천상에서 이불을 털고 있나 검은 구름을 뚫고 희뿌연 깃털들이
뽑혀나오는 저녁, 자살할 기회를 쥐기 위해 그들이 집을 떠날 때
나는 거울을 보며 마구 머리칼을 자르고 있었다 첫눈 내리던 밤이
었고 넓고 푹신푹신한 이불이 베란다 아래 펼쳐져 있었다
모두의 기대를 배반하고 난 눈을 뜬다 의사만 조금 웃는다 태어
나던 순간에도 이랬을 것이다
[감상]
태어나는 순간도 경이롭지만 죽을 뻔한 사람이 깨어나는 것도 경이롭습니다. 이 시는 이불과 타조, 얼룩, 자살로 이어지는 전이과정이 독특합니다. 어떠한 인과와 상식이 끼어 들 틈이 없이 자의식이 기술되어 낯선 알레고리가 형성되고요. 1연과 2연은 마치 꿈속 같은 상상의 언술이라면, 3연은 그 거침없이 뻗어갔던 진술을 현실에 활착 시키는 부분이 됩니다. 쉽게 간파되지 않아 내력에 여운이 있는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