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아픈 몸속일까」/ 이나명 / 『현대문학』2003년 11월호
누구의 아픈 몸속일까
스펀지가 물을 흠뻑 빨아들인다
오래 참았던 울음처럼
메말랐던 스펀지가 물에 닿을 때 온몸의 세포마다
가득가득 차오르는 물소리
이렇듯 차오른 물의 무게가 내 몸을 이루고 나는
뜬금없는 슬픔의 무게에 눌려 내 몸을 주저앉힌다
나는 또 오래도록 기다려야만 할까
그 누가 나를 선 듯 들어올려 한 손에 꽉
쥐어 짜줄까
징징거리는 내 속의 물들이 몸 구멍마다 차올라
출렁대며 부대끼며 넘치는 소리
넘치는 내 속의 내가 한정 없이 요동치며
그 누군가를 찾아가는 소리
그렇게 흘러가버린 나를 찾아 또 수도 없는 내가
철벅철벅 떠나가는 소리
흘러가 누군가의 몸에 닿은 듯 실타래 같은 물의 뿌리들
길게길게 뿌리 내리는 소리
너무 아득해 부르지 못했던 너, 아니
너무 가까워 볼 수 없었던 너
너의 나를 칭칭 휘감아 돌며 치며 철썩대는 소리
스펀지가 흠뻑 물을 빨아들이듯
그들을 빨아들인다 내가 빨려든다
누구의 아픈 몸속일까
지금 여기는
[감상]
스펀지를 통해 눈물과 슬픔의 무게를 짐작해볼 수 있는 시입니다. 뜻밖의 비보에 그냥 맥없이 주저앉아 우는 이유가 '슬픔의 무게에 눌려'라는 발상. 눈물의 진원지가 나였으니, 나에게서 흘러간 눈물이 어디 마음까지 가있을까. 가슴 쪽에 귀를 대고 있으면 그 물소리 들릴 것만 같은.